날 때부터 워낙 풍성하고 강력한 머리털을 가지고 있어서 항상 스트레스였다.
일명 '돼지털 머리카락'을 아는가?
중학교 때, 머리카락 싸움이라는 당시 유행하던 쉬는 시간 놀이가 있었는데 반 친구들이 모여들어 내 머리카락을 뽑아서 싸움에 참가했고 내 머리카락으로 전투를 시작한 사람은 연전연승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다. 나의 강철머리가 환호를 받을 때는 그때뿐이었다.
강력한 철사머리, 심지어 곱슬거리기까지 해서 항상 짧은 커트머리를 유지하였다. 긴 머리를 하고 싶어 단발까지 길러보았지만 주체할 수 없는 흩날림과 제멋대로 뻗치는 머리카락을 감당할 수 없어 늘 머리를 자를 수밖에 없었다.
린스와 트리트먼트를 아무래 때려 발라도, 매직 스트레이트를 몇 번씩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나의 머리카락을 잉태해 내는 두피세포는 이 세상 것이 아님이 분명했다.
신랑을 만날 때 즈음, 난 내 생애 최대로 여성스럽고 예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키는 작지만 제법 날씬하고 건강했으며 머리도 꾸준히 길러서 잘 묶을 수 있었다. 당시 발레를 취미로 하고 있어서 머리도 올백으로 붙인 업스타일로 차리고 다녔다. 이는 곱슬머리여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나에게 제법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었고 단정한 투피스 정장을 즐겨 입는 모습 때문인지 주변 남성들로부터 스튜어디스냐 라는 호기심 어린 질문을 받기도 했다. 그 단아한 모습은 신랑의 마음을 가장 설레게 했던 건지 나는 그렇게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고 더러운 성질을 참아가며 직장 생활을 이어가다가 결국 암에 걸리고 말았다. 항암치료를 하면서 나의 머리카락도 싹- 다- 빠져버렸는데 생각보다 홀가분하고 보기에 그리 나쁘지 않았다. 평생 나를 괴롭히던 돼지털 머리카락이 별로 아깝지도 않았고 '언제 한 번 이발기로 머리를 밀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계기로 헤어스타일에 대한 나의 소망을 실현할 줄이야!
'제발 좀 사회적으로 살면 안 되냐?'라고 남편이 뭐라 해서 실행을 못하고 있었는데..^^...
사실, 약간 고마운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모두가 나처럼 홀가분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머리카락이 빠져버리면 외출 시 나의 머리를 어떻게 스타일링해야 할지 너무나 난감해지기 때문이다.
많은 항암약들이 머리 빠짐 현상을 가지고 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평소 멋을 잘 부리는 아름다운 여성일수록 머리 빠지는 현상이 견디기 힘들다.
평생 샴푸하고 말리고 드라이 컬을 만들고 펌 하고 예쁜 핀도 꽂고 했던 나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순식간에 잃어버린다는 사실, 당분간은 모자나 가발을 쓰고 대머리를 가려야 한다는 충격은 그 여성을 패닉에 빠뜨린다. 가뜩이나 아파서 우울한데 그 우울감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 (심지어 한 번 빠진 머리카락은 잘 자라지도 않는다.)
장기간의 암치료는 사람을 정말 힘들게 한다. 생기가 빠지고 젊음도 사라지고 의욕도 없어지고, 내게 남은 시간이 줄었을 거란 생각에 나의 마음은 바닥끝까지 가라앉아 버린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 보니...
뭐 그리 대단한 병도 아니고 아직도 목숨을 잘 부지하고 있어서
나의 암치료 경험과 전통머리를 함께 아우를 수 있는 방향으로 전통머리 작업을 구체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 빠짐이 나에게 별 건 아니었지만 누군가에게는 큰 충격이 될 수 있고, 그 충격이 무엇인지 나 또한 잘 이해하고 있기에 내 삶을 녹여낸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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