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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질하게 놔둬라.. 난 이거면 된다

전통머리

by 이말뚝 2022. 10. 28.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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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연속 빗질을 하느라 고군분투 중입니다.
오른쪽 팔과 어깨가 집중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작업이 하나 끝날 때마다 해당 부위에 욱신한 통증을 느낍니다.
시간을 재어보았더니.. 최소 1시간입니다. 빗질만.
그나마 이게... 예전에 비해 빨라진 직업 시간입니다.
이전에는 빗는 기술이 없어서 시간이 더 오래 걸렸고, 힘도 더 들었습니다.

새벽녘까지 잠 못 이루고, 고통스러워했던 지난 시간이 떠오릅니다.
빗질을 하다가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엉켜버린 달비를 바라보며 멘붕이 와서 벽에 기대어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임계점을 넘어야 한다'는 말이 유행하던데, 정말 그 말이 맞습니다.
내가 그토록 원하는 결과에 부쩍 다가설 수 있습니다.
가슴속이 뻥~ 하니 시원한 느낌도 있네요.
무엇보다 '기술'을 터득했다는 게 가장 중요하겠지요.

그런데,

산꼭대기를 향한 추진력을 얻기 위해 불쏘시게 처럼 내 몸과 영혼을 산산조각 내어 이글거리는 아궁이에 던져 넣고 보니,
이제는 하얗게 재만 남았습니다.
암이라는 육체의 병도 얻었습니다.
저의 허약한 몸이, 임계점을 넘기 위한 광란의 퍼포먼스를 버티지 못한 거지요.

사람과 멀어지고, 건강을 잃고, 직장도 잃고... 이 기술을 얻은 거지요.
저는 임계점이라는 산꼭대기에 올랐습니다.
제가 상상했던 산꼭대기에 올라와 보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도 없는,
오직 불타오르는 태양과 뭉게뭉게 구름 만 떠있을 뿐입니다. 저 멀리 다른 사람들이 쌓아놓은 산꼭대기들도 보입니다.

다시, 머리 빗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주문이 밀려있거든요.
손가락이 으스러지도록 빗질을 해도 괜찮습니다.
어깨 아픈 것도 괜찮아요. 조금만 쉬면 나아지니까요.

제가 가장 무서운 것은,
심장이 녹아내릴 것 같은 스트레스입니다.
암 진단을 받기 전,
저는 심장이 녹아버릴 것 같은 가혹한 스트레스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그때는 제가 한 때 깊게 신뢰했고 좋아했던 인간도 합세해서 저를 더 괴롭히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 시기가 그럴 때였나 봅니다.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나를 괴롭히는 시기.. 삼재라고 표현하면 될까요..

이것만 아니면 됩니다.
머리 빗는 작업이 아무리 힘들다 해도 심장이 녹아버리는 고통을 느끼게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된 거죠.

이 고요함 속에 나를 제발 그냥 내버려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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