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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 미상 <토공전> ; 적당히 좀 살고 가라

수능 국어로 교양 쌓기

by 이말뚝 2023. 1. 13.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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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스토리 고등국어 문학 독해① 80쪽>

 

(윗부분 생략)......

"두 사람이 진술한 바로 그 옳고 그름이 불을 보듯 환하게 되었습니다. 폐하께서 병든 자를 위하여 죄 없는 자를 죽인다면 그 원망을 어찌하겠습니까? 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도와 공정한 처결을 하소서."

옥황이 그 말이 옳다 하고 다음과 같이 판결하였다.

"대체로 천지는 만물이 머물다 가는 여관과 같고 세월은 백 대에 걸쳐 지나는 손님과 같다. 낳으면 늙고 늙으면 죽는 것은 인간의 일상적인 일이오 사물의 항상 되는 일인 즉 진실로 이에 초연하여 혼자 존재함을 듣지 못했고 날개가 돋아 신선이 된다함을 듣지 못했노라. 또 혹 병이 들어 일찍 죽는 자나 혹 상처를 입어 죽는 자는 모두 다 명이니 어찌 원혼이겠는가? 동해용왕 광연은 병이 들었으나 도리어 살고 만수산 토끼는 죄가 없으나 죽는다면 마땅히 살 자가 죽는 것이다. 광연이 비록 살아날 약이 있다 하나 토끼인들 어찌 죽음을 싫어하는 마음이 없겠는가? 광연은 용궁으로 보내고 토끼는 세상으로 놓아주어 그 천명을 즐기게 함이 하늘의 듯에 순응함이라."

이에 다시 뇌공을 시켜 토끼를 만수산에 압송하니 토끼가 백배사례하며 가버렸다.

이날 용왕이 적혼공에게,

"옥황이 죄 없이 죽는다 하여 토끼를 보내주는 모양이니 너는 문 밖에 그가 나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가 바로 죽여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면할 수 없으리니 입조심하여 비밀이 새어나지 않도록 해라."

하니 적혼공이,

"대왕의 입에서 나와 소신의 귀에 들어온 말을 어찌 아는 이가 있겠습니까?"

말을 마치자 우레 소리가 나고 광풍이 갑자기 일어 뇌공이 토끼를 압령하여 북쪽을 향하여 가니 날아가는 화살 같고 추상같았다. 적혼공이 손도 못 대고 손을 놓고 물러가니 용왕은 크게 탄식하며,

"하늘이 망해놓은 화이니 다시 바랄 게 없구나."

하고 적혼공과 더불어 손을 잡고 통곡하며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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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공전>은 <토끼전>을 각색한 한문소설이라고 한다.

토끼를 놓쳐서 분을 삭이지 못한 용왕 광연은 옥황상제에게 재판을 열어달라 부탁하였고 이에 토끼는 옥황상제 앞으로 강제소환된다. 용왕과 토끼는 각자의 느낀 바를 글로 자세히 적어 옥황상제에게 제출한다. 그 글을 읽고 옥황상제는 신하와 의논한 뒤  '용왕 너는 살만큼 살았으니 괜히 생목숨 잡지 말고 순리를 따르라.'는 결론을 내어준다. 하지만 용왕 광연은 부하를 시켜 토끼를 몰래 죽일 것을 명하지만 하늘의 뜻임을 받아들이고 토끼를 포기하기에 이른다.

용왕은 그저 병을 낫기 위해 소극적인 노력만 한 인물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뒷이야기를 읽고 보니 온갖 꼼수(재판, 청부살인)를 쓰며 본인의 목숨을 부지하려 애쓰는... 현생에 애정이 너무나 많은 탐욕스러운 늙은이였다. 원래 가진 게 많고 그것을 유지하려고 하면 절대 죽고 싶지 않은 법이다. 그러게 이 좋은 세상을 놓고 왜 빨리 가야 하는가? 나름 고생해서 만든 인생을 쉽게 놓을 수 없지. 

이런 욕망으로 인해 당시 힘없는 하위계층의 사람들은 목숨을 많이 잃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끔찍하기는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생명을 빼앗는 일이 많이 저질러졌을 것 같다. 토끼의 간이 치료제라고 소설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 생간을 섭취하는 게 나름 그 시대의 효과적인 치료법이 아니었을까? 구미호가 간을 빼먹는다는 이야기도 그런 연장선 상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쥐도 새도 모르게 간을 빼어 먹힌다는 전설도 생각해 보면, 생명 연장에 대한 욕망이 그 바탕에 깔려 있을 법도 하다.

요즘도 그런 일이 간혹 일어나긴 하지만, 막강한 권력을 가진 누군가의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힘없는 누군가의 생명을 희생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던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했을 것이다. 옥황상제의 판결처럼 개인의 소중한 생명과 인권을 강조하는 데는 그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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