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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는 나의 친구

수능 국어로 교양 쌓기

by 이말뚝 2023. 1. 26.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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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진서 옹

<자이스토리 고등국어 비문학 독해① 122쪽>

(앞부분 생략)

하지만 그러한 하늘에 대한 인식은 인간 지혜의 성숙과 문명의 발달로 인한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의해서 대폭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순자의 하늘에 대한 주장은 그 당시까지 진행된 하늘의 논의와 엄격히 구분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매우 새롭게 변모시킨 하나의 획기적인 사건으로 규정지을 수 있다. 순자는 하늘을 단지 자연현상으로 보았다. 그가 생각한 하늘은 별, 해와 달, 사계절, 추위와 더위, 바람 등의 모든 자연현상을 가리킨다. 따라서 하늘은 사람을 가난하게 만들 수도 없고, 부자로 만들 수도 없으며, 길흉화복을 줄 수도 없다. 사람들이 치세와 난세를 하늘과 연결시키는 것은 심리적으로 하늘에 기대는 일일 뿐이다. 치세든 난세든 그 원인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지 하늘과는 무관하다. 사람이 받게 되는 재앙과 복의 원인도 모두 자신에게 있을 뿐 불변의 질서를 갖고 있는 하늘에 있지 않다.

하늘은 그 자체의 운행 법칙을 따로 갖고 있어 인간의 길과 다르다. 천체의 운행은 불변의 정규 궤도에 따른다. 해와 달과 별이 움직이고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것은 모두 제 나름의 길이 있다. 사계절은 말없이 주기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물론 일식과 월식이 일어나고 비바람이 아무 때나 일고 괴이한 별이 언뜻 출현하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이 항상 벌어지는 것은 아니며 하늘이 이상 현상을 드러내 무슨 길흉을 예시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즉, 하늘은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데 사람들은 하늘과 관련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순자는 천재지변이 일어난다고 해서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순자가 말하는 불구지천의 본뜻이다.

순자가 말한 불구지천의 뜻은 자연현상으로서의 하늘이 아니라 하늘에 무슨 의지가 있다고 주장하고 그것을 알아내겠다고 덤비는 종교적 사유의 접근을 비판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억지로 하늘의 의지를 알려고 힘을 쏟을 필요가 없다. 사람들은 자연현상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오직 인간사회에서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 즉, 재앙이 닥치면 공포에 떨며 기도나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행위로 그것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다.

순자의 관심은 하늘에 있지 않고 사람에 있었다. 특히 인간사회의 정치야말로 순자가 중점을 둔 문제였다. 순자는 "하늘은 만물을 낳을 수 있지만 만물의 하나로 하늘이 낳은 존재이나 하늘은 인간을 낳았을 뿐 인간을 다스리려는 의지는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늘은 혈기나 욕구를 지닌 존재도 아니다. 그저 만물을 생성해 내는 자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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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던 어린 시절, 중학교 2학년 때 어느 봄날이었다.

시립도서관의 한 구석, 아무도 찾지 않는.. 더군다나 나처럼 어린 여학생은 근처에도 가지 않는 동양철학 코너에 가서 누렇게 손때 묻은 순자를 난생처음 만나게 되었다. 당시에도 오래된 책이었던지 누렇게 변색된 종이에 글자가 세로로 인쇄된, 숨이 탁탁 막히는 고리타분함이 느껴졌지만 '성악설'이라는 단어에 매료되어 한 장 한 장 읽어보았다.

그때 무슨 내용을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은 원래 악한 본성이 있기 때문에 학습과 훈련을 통해 바른 인간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매우 진취적인 내용이어서 순자라는 옛날 사람이 갑자기 책에서 튀어나와 나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생동감이 느껴졌다. 당시 나는 인간에 대해 엄청나게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인간이란 매우 사악한 존재라는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던 순자가 너무나 좋아져서 그 이후로 서너 번 매주 같은 자리에 가서 성악설을 뒤적거리며 책을 찾아보았다. (바로 옆에 맹자의 성선설도 있었지만 보고 싶다는 생각은 1도 들지 않았다.)

 

위의 글은 순자에 대해 아주 예쁘게 서술된 에세이처럼 느껴진다. 글의 전개가 굉장히 친근하고 매끄러워서 초여름의 싱그러운 나뭇잎을 보는 듯한 상쾌한 기분이 든다. 순자의 사상을 통독, 정독하여 자신만의 언어로 쉽고 자연스럽게 풀어낸 저자의 글솜씨가 정말 놀랍다. 세상에는 글 잘 쓰는 사람들이 아주아주 많은 것 같다. 너무나 존경스럽다.

존경이라는 말이 조금 가식적으로 느껴지기는 한데... 달리 할 말이 없다.

난 그냥 가식적인 인간으로 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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