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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머리

by 이말뚝 2023. 3. 9.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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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르고 벼르던 리본달비 작품을 완성하였습니다.

대형 달비를 만져본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이런 작업을 할 때마다 어렵고 힘들고 진땀이 흐릅니다.

좁디좁은 구면체 위에 무겁디 무거운 달비를 올린 다음 기다란 속비녀를 이용해 고정해 줍니다.

말이 쉽죠...

이 작업을 어떻게 진행했는지, 어떻게 완성할 수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고 말도 글도 잘 나오지 않습니다.

 

틱톡에 이 작품 영상을 올리면서, 틱톡의 강력한 기능인 '사운드 추가'를 위해 적절한 음원을 이리저리 고르던 중...

비발디 '사계'의 '봄' 악장을 들었습니다.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껍질을 뚫고 살아 나오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리드미컬한 바이올린 선율이 저의 귀를 꿰뚫었습니다.

'아니.. 이렇게 변덕스러운 음색을 봄이라는 주제에 포함시키다니...'

저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이건 진짜 봄의 소리였거든요.

 

어린 시절, 황량한 비포장 도로가에 커다란 길고양이 시체가 버려져 있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황사바람 불어오던 봄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곳은 버스정류장이었기 때문에 학교 가는 길에 매일 그 시체의 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후 강직이 와서 네 개의 다리가 하늘을 향해 있었습니다. 하루가 지나니 가죽이 썩어 문드러지기 시작하고 이틀이 지나니 내장이 드러났으며, 일주일이 지나니 하얀 갈빗대가 나타났습니다. 삼주가 지나자 갈빗대 사이로 새싹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새싹은 무럭무럭 자라 아름다운 꽃을 피우며 싱그러운 생명력을 뽐내었습니다.

 

이게 봄입니다.

 

봄의 잔인성.

생명은 잔인한 것이며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죠.

 

죽음을 죽이는 것이 바로 봄입니다.

 

비발디의 사계의 봄 악장이 저의 작품과 어쩜 그리 딱 맞아떨어지는지~^^

오래간만에 적당한 BGM을 찾을 수 있어서, 그리고 저의 작품에 대한 새로운 느낌을 풀어낼 수 있어서 너무나 뿌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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