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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루틴으로 하루 보내기

유방암 치료

by 이말뚝 2022. 4. 4.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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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출근하는 신랑을 위해 전날 저녁에 찌개를 끓여놓고,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을 깨우고 간단히 식사를 준비하여,

따뜻한 음식을 마음껏 먹은 뒤 편안한 마음으로 등교할 수 있도록 준비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프렌치토스트를 구워서 달콤한 딸기잼을 찍어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주었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접시 위에 잔뜩 담긴 토스트는

아이들을 스스로 침대에서 일어나서 식탁에 앉게끔 해주는 마법을 부려주었습니다.^^

 

행복하네요.

 

직장 다닐 때는 새벽같이 출근하느라 애들이 뭘 먹고 다니는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전날 저녁에 끓여놓은 든든한 국이 있으니 알아서 밥 말아먹고 가겠거니 했어요.

요즘은... 워킹맘 손길 아래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느낄 정서적인 허기가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일하는 엄마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아이들도 그 삶의 허기를 어느정도 감내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엄마로서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겠지만 참아내야 합니다.

매일 눈물을 흘릴 수는 없으니까요.

 

저는 참은 적이 없어요.

아이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구요.

그냥 그렇게 냉정하게 살아야 하는줄 알았습니다.

 

애들도 어릴 때는 멋모르고 지나갑니다.

점점 커갈수록 아이들의 얼굴에 알 수 없는 수심이 깊어집니다.

그리 심각한 고민은 아닌 것 같지만,

저녁에 가족이 모였을 때 거실 가운데를 중심으로 약간의 냉기가 도는 느낌이랄까...

아침에 일어날 때 따뜻한 손길을 많이 받지 못한... 마음의 배고픔의 느낌 같은 것...

 

집에서 애들이 웃을 일이 없어집니다.

웃을 일이 없다는 것을 저는 알아차리지도 못합니다.

피곤해서 늘 누워있었으니까요.

 

항암치료를 시작하면서 시간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살림살이에 조금 애정을 더해봅니다.

주부로서 집안을 정리하고 설겆이를 하고 요리를 하는 시간이 저에게 엄청난 안정감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늘 마을 뒷산을 오릅니다.

계곡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소리가 들리는 예쁜 등산로입니다.

사람도 많이 다니지 않는 조용한 곳이라 그곳의 모든 공기, 모든 공간이 다 저의 것만 같습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전망대에 올라 맨손체조를 합니다.

보송보송한 회색 가슴털이 달린 귀여운 새 한 마리가 제 앞에 앉아 이리저리 깜빡깜빡 쳐다봅니다.

시커먼 트레이닝복을 입고 팔을 쫙 펴고 체조를 하고 있었더니,

커다란 까마귀처럼 보였나봅니다.^^

졸졸졸~ 계곡물입니다.

 

그렇게 산을 내려오면 피곤하죠.

 

식사를 간단히 마치고 낮잠을 잠시 청합니다.

 

오후에 일정이 있다면 간단히 진행하고 빨리 귀가해야 합니다.

걷는 것도 숨에 차니까요.

덜 아파보이는 사진으로 골랐습니다~;; (주름살도 좀 가려지도록~~)

 

산에 오를 때마다 숨이 찰 때는 분노, 후회, 미련... 여러 가지 감정들이 뒤섞여 가슴을 차고 오릅니다.

저는 학창시절이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람을 좋아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 소중한 사람인 줄 알고 함부로 맺은 인연은 저의 20년을 그냥 날리게 만들었습니다.

저의 미래마저 날릴 뻔 했지요.

항상 변하는 인간을 어떻게 믿고 살았는지

저의 무지함에 치가 떨립니다.

나의 부모와 내 힘으로 이룬 가족 이외에는

그리 도움될 것 없는 인연들.

나는 그들에게 사랑받으려고 왜 그렇게 애썼을까.

 

그건 미친 짓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산 전망대에 올라가 가만히 앉아있다가 내려옵니다.

도화지처럼 깨끗하고 단정한 마음이 되어 집으로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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