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상한 당사자들을 중심으로 두 팀으로 나뉘어 각각 자신들만의 무리를 만든다.
서로의 약점을 잡아 험담을 하며 결속을 단단히 한다.
찰진 수다가 물흐르듯이 흐르며...
그랜드캐니언의 삭막한 절벽처럼 나뉘어 있던 그들의 관계는 언제그랬냐는 듯 지각변동을 일으키며 기름진 초원으로 변한다.
각각의 무리는 1~3명으로 구성되며, 중심인물의 역량에 따라 10명 이상의 큰 무리를 형성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여자분들이 많이 포진해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관찰된다.
학교와 회사, 아파트 단지가 대표적이다. 아, 시댁도 포함되겠다.
기분이 나쁠 때는 서슴없이 팩트를 말하는 성격 덕분에
여자들끼리의 감정 싸움에 깊게 휘말린 경우가 많았다.
10대, 20대, 30대, 40대... 앞으로도 계속 되겠지... 흐미...징한거...-_-;;;
연령대와 관계없이 항상 똑같은, 아주 살벌한 전선이 펼쳐진다.
나에게 감정이 상한 상대방은 즉각적으로 병사들을 징집하고 서로 간에 밀착된 거리를 유지하며 목표물을 향해 안구 흰자위 드러내기, 무관심 보여주기를 시전한다.
감정을 다쳐서 남들에게 이러쿵저러쿵 하소연하는 행동을 극혐하는 나는,
이런 식으로 무리를 형성하는 짓을 하지 않는다.
내가 무리를 짓지 않고 아무 반응을 하지 않으니 자기들끼리 엄청나게 결속하다가 대부분 1~2년 사이에 흐지부지 된다. (즉, 1~2년만 참으면 된다.)
여러 무리를 상대하면서 겪었던 소리없는 전쟁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파트단지 내의 미시족들과의 '1 대 셀 수 없음' 관계 전선이다.
이 전쟁은 내가 겪었던 것 중 가장 치열하고 살벌하고 힘들었다.
우선 숫적으로 너무나 열세였고, 나의 자녀들이 끼어있어서 홀로 의연한 모습을 가장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상대방 무리의 아이들이 내 아이들을 괴롭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그래도... 한... 10년 정도 지나가니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흐지부지 되었다.
참 웃기는 건...
그때 나를 두고 험담했던 사람들이... 하나 같이.. 괴랄한 결말을 맞이하는 거다.
대학에 떨어지거나, 몸이 아프거나, 창피를 당하거나, 경제력을 상실하거나, 힘든 업무를 맡거나, 하는 일이 안 풀리거나 했다.
특히 아파트 단지의 그 엄청난 무리를 이끌었던 두목 여인의 결말이 기억에 남는다.
뉴스에 나올 만한 큰 사건으로 그 집안 가장이 몸담았던 업계 자체가 우리나라에서 완전히 박살나고 그 가족은 한국을 떠나게 된 것이다.
그래도 매년 방학 때마다 한국에 들어와 아파트 단지에 출몰하며 나를 계속 험담하고 무리를 이끌고 다니더니
코로나가 터지면서... 더이상 볼 수 없었다.
야... 대단하다... 10년..
두목 여인은 그동안 한국에 들락날락하며 한국의 의료혜택을 꾸준히 받기 위해 그렇게 싫어하던 시아버지 앞으로 본인과 자녀들의 건강보험 주소지를 철새처럼 옮겼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다. 솔직히 안타까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을 끊임없이 괴롭히면 이렇게 되는구나.. 하고...
여자들의 감정 싸움에 절대 휘말려서는 안된다.
무리를 지어 1명을 왕따시키는 야비한 습성들...
초등학교 때부터 무리 짓는 것을 지속했던 사람들은 그 습성을 버리는 것이 쉽지 않고,
나이 먹고서도 동창모임이라는 명목하에 서로 모여들며 여전히 다른 사람을 뒷담화하다가,
결국엔 서로를 뒷담화하며 무리 생활을 계속 이어나간다.
정말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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