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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통이 또다시 찾아왔습니다...

유방암 치료

by 이말뚝 2022. 8. 9.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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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또래의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는 두통이지만... 정말.. 너무 힘들다.

거의 일주일에 한 번, 특히 토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극심한 두통을 겪곤 했다. (출근 직전에 두통이 풀렸다...)

암 선고 후 집에서 쉬게 되면서 두통은 거의 겪지 않지만, 한 번씩 두통이 찾아올 때마다 그 엄청난 고통에 몸서리를 친다.

좌우 골이 모두 욱신거리고 뒷목까지 뻣뻣해지며 누워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식물인간의 상태가 된다.

두통은 위장에까지 영향을 미치는지, 섭취하는 모든 것을 게워내 버린다.

두통약을 먹기 위해 마신 물 한 모금조차 모두 게워내야 끔찍한 토악질이 멈춘다.

조금 더 심해지면 얼굴 한쪽이 퉁퉁 붓거나 촉각이 둔해지기도 한다.

(예전에 신경외과에서 비싼 돈 들여 진단을 받아보았다. 원인불명이라고 한다.)

 

 

한동안 날씨가 너무 더워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에어컨이 없으면 숨을 쉴 수 없고 에어컨을 틀고 있으면 냉기가 스멀스멀 기어올라와서 등골이 시린다. 그래서 이 한여름에 옥장판을 약하게 틀어야 겨우 잠을 잘 수 있었다.

잠깐 걷거나 간단한 체조를 하며 땀을 흘리는 정도의 수고를 하면 잠이 잘 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웬걸... 몸이 더 아프기만 했다. 제대로 된 호흡을 할 수 없어서였을까...

하긴 뭐... 바람이 전혀 불지 않는, 한밤의 기온이 29도에 육박하는 열대야, 습도가 80%가 넘는 상태에서 몸을 움직이는 자체가 벌써 고통이었다. 즐겁지 않았다. 억지로 참고 움직인 살기 위한 처절한 몸짓이었다.

 

 

추웠다 더웠다를 반복하는 갱년기 증상을 겪던 나의 육체는 드디어 두통의 전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토요일부터 시작된 두통은 화요일 오전까지 계속되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식물인간 모습으로 누워있었고, 통증을 못 이겨 누렇게 뜬 시커먼 얼굴, 두통이 오는 쪽으로 찡그린 눈,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토악질해대는... 그 소리만으로 온 가족들에게 공포를 심어주는 괴물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치통까지 같이 시작되었다.

치아는 건강한 편이라 그동안 별로 신경 써 본 적이 없었다.

왼쪽 어금니 깊숙이 사랑니가 나 있는데 일상생활에 전혀 문제가 없어서 뽑지 않고 놔뒀었다. 이게 문제였다.

항암치료가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잇몸에서 피가 나거나 조금씩 아픈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사랑니 쪽으로 엄청난 고통이 몰려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사랑니 쪽 잇몸이 단단하게 부어올라서 입을 벌리거나 음식물을 전혀 씹을 수가 없었다.

음식물을 넣기 위해 왼쪽 입을 조금 벌리는 것도 엄청난 고통이었고 그 통증은 관자놀이를 타고 올라가 왼쪽 골을 지끈거리게 했으며, 아래쪽 턱으로 타고 내려가 턱뼈 안쪽이 쿡쿡 쑤시는 아픔을 주었다.

하지만, 함부로 집 근처에 있는 치과에 갈 수는 없었다.

항암 중인 내가, 주치의와 상의 없이 마음대로 사랑니를 발치했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누가 알겠는가.. 무서웠다.

통증이 가라앉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ㅠㅠ

 

3일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고 육체와 영혼이 사정없이 탈곡되었다.

그래도 파클리탁셀 10차 항암을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 

 

토악질이 조금 안정되어 출발 전에 진통제를 복용했다.

(이렇게 아플 때는 타이레놀은 효과가 없다. 역시, '게보린' 이 직빵이다. 병원에서 타 온 진통제는 효과가 너무 좋아서.. 무섭기도 하고 해서... 그대로 남겨두었다.)

 

비가 미친 듯이 쏟아지는 도로를 달렸다. 오랜만에 차창을 때리는 시원한 비 구경도 하고, 신나게 움직이는 와이퍼의 춤사위도 보고, 빗길에 거북이처럼 천천히 움직이는 차들, 사정없이 끼어드는 덤프트럭들과 함께 하면서 한정 없이 늘어지는 운전시간에 내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그 사이 통증이 조금씩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아... 정말 다행이다...ㅠㅠ

침대에서 항암 주사를 맞으며 생각했다.

'병원에서 힐링을 하는구나...'

깨끗하게 정돈된 하얀 침상과 적절한 습도와 온도, 숨쉬기에 너무 좋은 깨끗한 공기 상태가 정말 정말 정말~ 마음에 들었다.

 

숨쉬기가 너무 편하고 매끄러운 것이다. 공기가 이렇게 달고 스위트한 맛이라니~~!ㅠㅠ 너무 감사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단잠을 이루었다.

 

그렇게 편안하게 1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그 끔찍한 두통과 치통이 거의 다 사라져 있는 게 아닌가.

 

에어컨은 꺼버리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비가 들이치든 말든, 나는  '자연공기'를 마셔야 했다.

비가 세차게 와서 그런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나에게 맑은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다.^^

너무너무 좋았다. 열린 창문 쪽으로 의자를 돌려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집에서 하는 풍욕이다..

 

며칠 만에 찾아온 이  '육체의 평화'는... 내게 모든 것이다.

몸이 아프지 않으니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고, 대화를 할 수 있고, 읽고 쓸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뼈와 살로 이루어진  '물질' 임을 인정하자.

이 물질을 건강한 상태로 만들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

내 몸뚱이에게 맛있는 것을 많이 먹게 해 주고, 푹 자게 하고, 깨끗하고 씻어주어야 한다.

 

그러고 보니... 암 선고를 받기 2년 전부터 아니, 10년 전부터 나는 내 육체를 전혀 돌보지 않았었다.

먹지 않고, 잠을 안 자고, 제대로 씻지도 않았다.

내 영혼과 감정이 열정적이고 미친 듯이 불타오르고 있다면 육체의 고통에 찬 아우성쯤이야 간단하게 눌러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난 영적인 인간이라고 확신했으니까.

 

 

이게... 뭔... 미친 생각인지... 제정신이 아니었어...

된장찌개에 환장하고, 그렇게 먹은 것들을 꾸준히 인분으로 재생산하는 주제에...

 

 

인간은 육체를 기반으로 한 영적인 존재이다.

육체가 먼저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순환을 회복하는데 내 활동의 지분을 늘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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