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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밤

말뚝이의 일기

by 이말뚝 2022. 9. 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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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스키.. 잡히기만 해봐라"

 

어제저녁 산책 시간을 놓치는 바람에 밤 11시 30분이 넘어서 아파트 산책로를 걷게 되었다.

그날따라 이상하게 사람이 단 한 명도 없고, 을씨년스럽게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까지 했다.

아파트 산책로는 가로등이 비교적 많은 편이라 밤 산책이 무서운 것은 아니었지만... 어제는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늘 걷던 코스대로 생각없이 걷다가 보니 뭔가 이상한 느낌에 옆 눈으로 슬쩍 쳐다보니

바로 옆에 긴 그림자가 다가와 있는 게 아닌가. 발자국 소리도 전혀 들을 수 없었다.

너무 놀라서 "아이고~ 깜짝이야~" 했더니

다 잡은 고기를 놓쳤다는 듯이 그 그림자는 내 옆으로 싹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내가 놀라든 말든 그 그림자의 정체는 자기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걸어가는 뒷모습을 자세히 뜯어보았다.

키가 한 165cm 정도의 아직은 여린 뼈대의 왜소한 남자였다. 한 20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학생이었다.

 

알바가 끝나서 그 시간에 오는 건지 친구랑 술 마시고 오는 건지 알 수는 없으나 분명 이 아파트에 사는 인간일 것이고

아무도 없는 비내리는 적막한 밤에 혼자 걷는 여자를 대상으로 잠시나마 장난질을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난 커다란 우산을 쓰고 있어서 뒤에서 보았을 때 자기 또래의 만만한 여학생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기분이 정말 더러웠다.

대학시절 밤늦은 시간까지 작업을 하다가 귀가하는 길에 이와 비슷한 일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때 정말 위험할 뻔 했는데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해 겨우 벗어날 수 있었던 뼈아픈 기억이 생각나는 것이다.

슬쩍 화가 치밀어올랐다.

 

내 앞으로 자신만만하게 걸어가는 그 회색 운동복 새끼가 어느 동에 사는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10m 거리를 유지했다.

나는 발자국 소리를 당당히 내면서 걸어갔다.

 

드디어 어느 동쪽으로 걸어가길래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나무 사이에 몸을 숨긴 채 허리를 뒤로 살짝 꺾어서 머리만 내밀고 그 새끼가 어디로 가는지 계속 지켜보았다.

한참 걸어가더니 그 새끼가 몸을 뒤로 확 돌려서 쳐다보는 게 아닌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음... 어쩔 수 없지..

난 우산을 그대로 쓴 채 나무 사이에서 천천히 몸을 드러내어

그 새끼가 나를 바라볼 수 있도록 우두커니 길 가운데로 나와 섰다.

시커멓고 커다란 우산, 아래 위로 검정 색 의상, 대머리에 쓴 하얀 손수건, 항암 치료에 시달린 늙은 내 얼굴을 그때 제대로 본 것인지...

그 어린 새끼는 순간 패닉에 빠진 것 같았다.

 

한 10초 정도 그대로 멈춰 서서 계속 쳐다보았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그 쥐새끼를 코너에 너무 몰지 않기로 했다.

내가 물릴 수도 있으니까.

 

뒤로 살짝 후퇴...

 

불 켜진 경비실을 등 뒤에 지고  그 새끼가 나를 따라오나 안 오나 계속 기다려보았다.

한 30분을 우두커니 서있어 보았다.

나무 사이에 숨어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건지, 아니면 집구석으로 기어들어간 건지 알 수 없었다.

어느덧 12시가 넘고.. 시간이 너무 늦어 집에 돌아왔다.

 

찐따 같은 멸치 새끼가 저딴 식으로 되지도 않는 장난을 치며 혼자 있는 여자를 위협하는 행위는 절대 용서될 수 없다.

내 딸들을 위해서, 이 세상의 모든 딸들을 위해서 말이다!

 

오늘 그 찐따 새끼가 서 있던 장소에 다시 한번 가보았다.

여러 갈래로 산책로가 나있는 다소 복잡해 보이는 좁은 장소였다.

그곳에 서 있으면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조용히 지켜볼 수 있는..

은신처같이 묘하게 구린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나에게 뒤를 밟히며 어떻게 이런 장소를 금방 골라낼 수 있었던 걸까?

165의 멸치 찐따가 대가리를 굴리며 찾아낸 정말 찐따 같은 장소였다.

안타깝다.

저 인간은 왜 저렇게 사는걸까?...

 

나의 딸들이 성장을 하면 언젠가 다른 집의 귀한 아들들과 사랑을 하고 결혼도 하게 될 것이다.

세상의 딸들이 귀하듯이 세상의 아들들 또한 너무너무 귀하고 귀하다.

너무나 귀한 아들들이기에..

나와 같은 싸이코에게 찐 매운맛 참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다시는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을 것이고

그 에너지를 올바른 곳에 사용할 수 있게 되니까 말이다.

 

나는 어린 남학생들의 밝고 힘찬 에너지를 좋아한다.

가끔 생각이 없어보이긴 하지만 여학생과는 또다른 그들 나름대로 순수함이 느껴져서 참 좋다.

참교육의 힘으로 조금만 손을 보면 된다. 조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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