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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안되니까 너도 안된다

말뚝이의 일기

by 이말뚝 2022. 7. 29.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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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원래 이기적인 존재.
자기 앞가림만 겨우 하다가 죽음으로 향한다.
그래도 나는 남을 생각해봤다는 잡소리는 하지말자.
남을 생각해봤다는 것도 따지고보면 그게 나의 입장에서 이득이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나왔겠지.. 그렇지 않은가?

10살 어릴 적부터 늘 궁금했다.
친구란 무엇일까. 같은 공간에 있다고 해서 친구가 될 수 있는가. 내게 없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곁에 두기 위해 친구라는 이름을 붙이는 행동은 얼마나 가식적인가..
짝꿍 하나 없이 교실 한켠에 가만히 앉아 늘 이런 생각을 했었다.

혈연과 혼인으로 맺어진 필연적인 관계 이외에 '우정' 이라는 소프트하고 꿈같이 아름다운 관계를 맺을 존재가 내 인생에 한 명은 있을거라 늘 생각해왔었다. 그리고 늘 바래왔고 늘 갈구했다.

초등학교 교실 한 구석에서 시작된 고민은 30년의 세월을 관통하며 나를 괴롭혀왔다.

그간 친구라는 이름을 붙였던 존재들과 함께 만들었던 시간은 말 그대로... 멍이었다.

멍 때리며 시간을 보냈고, 결국에 가슴에 멍만 남았다.


좁고 깊은 관계는 위험하다.

20살부터 괜찮다고 생각되는 사람과 아주 좁고 깊은 친구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아. 물론 나만 좁았다.. 상대방은 넓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름 인싸였으니까. )

그 친구는 내게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었다.
나는 밖에 나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은둔형 인간, 히끼꼬모리였기에..
그 친구가 말해주는 일상, 다른 사람들 이야기, 내가 모르는 세상의 일들이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조용히 공부하고 직장 생활을 지겨워하면서도 꾸역꾸역 해내던 나와는 아주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들과 일을 만들고 작품 생활을 하고 다양한 즐길 거리를 끊임없이 개발하는, 삶에 거침없는 사람이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관계를 길게 유지했었다.

억지로 다가갈 필요가 없는, 적정한 거리가 유지되는 관계였다.
서로의 성향이 너무 달랐기에 그 오랜시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사이 크고 작은 일이 왜 없었겠는가... 내가 툭 치는 말에 그 친구도 서운했을 것이고, 그 친구가 아무 생각없이 하는 말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래도 좋았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그런 소소한 잔물결에 우리의 관계가 점차 깎여나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나의 일상의 무게만 해도 너무 버티기 힘들어진 것이다.
난 정해진 시간에 노동을 해야만 하는 사람이었고 충분한 휴식시간이 확보되어야만 하는 그야말로 일반인이었다.
전쟁같은 일주일이 지나고 금요일 퇴근 후면 나는 손가락 까딱 못하고 침대에 누워버린다.
집안 살림이고 애들이고 눈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죽음의 피로를 느끼는 시간대에 들어선 것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신랑도 건드리지 않는 극한 피로의 시간을 그 친구가 깨기 시작하는 것이다.

본인의 일과시간 조절이 가능한 그 친구는 아마 그 시간대가 전화통화하기 부담없는 시간이라고 판단을 했던 모양이다.
'이 친구 미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하면서도 오랜 시간 관계를 맺어온 정이 있기에...
억지로 억지로 힘을 짜내어 통화를 이어간다.
뭔가 억울하고 속상하고 몸이 아프거나 할 때 전화를 걸어온다.
일반적이고 아주 평범하게 규칙적인 생활을 해나가는 나를 보며 마음의 안정을 얻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더욱더 아무말을 할 수 없었다. 특별한 삶을 사는 그대이기에 평범한 내가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게 맞는 것 같았다. 본인의 특별한 삶의 이야기가 내게 예술적 생기를 불어넣어 줄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끊임없이 쏟아내는 말 속에 통화시간을 조금 줄이는 건 어떨까 라는 의중을 그 친구에게 살짝 전해본 적이 있었다.
본인은 전화로 곧바로 용건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오랜시간 길게 통화를 한 뒤 마지막에 본인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이유를 말하게 된다고 하였다.
참말로 할 말이 없었다. 이걸 예의 있다고 해야 하는 건가...

장시간 통화의 이유로 그런 낭만적인 삶의 철학을 수용할 수 있는 건 30대 중반까지이다.

나는 이제 나이가 들어버렸다.
신랑도 나도 나이가 들었고, 꾸준히 다닌 직장 내에서도 중늙은이였으며, 아이들도 훌쩍 자라 있어서 이제는 육아가 아닌 교육의 관점에서 자녀를 대해야 하는 중년의 나이였다.

매일매일 한 걸음이 무거운 일상인에게 꽁냥꽁냥 즐거운 소확행이 무슨 소용인가.
그 친구도 나름대로 무거운 일상생활이 있었겠지만 꽁냥꽁냥만으로는 일상의 무거움을 해소할 수는 없지 않은가.
중년 이후로는 젊은 시절과는 또다른 돌파구가 필요하다.

20대 시절의 어리숙한 내가 아직까지도 그 모습이라고 생각하면서, 본인의 이야기를 빨아들여주는 스펀지 정도로 생각을 했던 것일까.

어느 날인가 퇴근 후 옷도 벗지 못하고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있었다.
전화가 왔다.
시청 공무원과 협상할 것이 있는데, 친구인 너가 이 일을 좀 도와줘야겠다는 것이다.
눈에 핏줄이 올라서 벌건 상태였지만 그 친구를 위해 몸을 억지로 일으켜 문서를 살펴보았다.
문서 작성은 쉽지만 탈고가 몇 배는 더 힘들다는 점을 아는가.
친구가 말하고 싶은 내용을 항목별로 정리하느라... 퇴근 후 내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모두 써버렸다.
그 일 자체가 힘든 게 아니었다.
퇴근 후 나의 일상을 위해 조그맣게 남겨뒀던 불씨가 꺼져버리고 하얗게 재가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렇게 수정해서 건네준 문서를 받아본 친구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냥 기분 나빠하는 것 같았다.
나도 하나 느낀 바가 있다.
어디서 글 쓸 줄 안다는 말은 함부로 하면 안된다는 것을.


직장생활의 애로를 그 친구에게 풀다보니 듣기 지겨웠는지..
'이제 그만둬라. 그만두고 나랑 퇴직파티나 하자' 라고 한다.

근데... 이상하게 이 말이 수긍되지 않는 것이다.
대책없는 말이었으니까.
나의 고충을 이해해줘서 고맙긴 했지만 뭔가 무용한 말들...

얼마 뒤 은행대출을 알아본 적이 있는데 깜짝 놀랐다.
일정한 수입이 있는 직장인이라는 조건은 대출금 받는 데 엄청난 장점이 되는 게 아닌가.
대출 때문에 본인 또한 고생한 경험이 있었으면서 나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있었을까.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안되니까 너도 안돼... 이런 것인가?
속상하고 황당한 마음을 그 어디에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전통머리 연구를 계속하면서 여기저기서 강의 제안이 들어오곤 한다.
제안이 들어왔을 때 그 친구와 상의를 해본 적이 있었다.
'안돼, 그런 거 하지마. 이런저런 것 때문에 너 많이 속상할 거야. 내가 다 해봤잖아.'
어차피 몸도 아프고 시간도 별로 없어서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정말 후회했다.
일이 시작될 초입에 다른 사람에게 미리 오픈하면 안된다는 진리를 잊어버린 것을 말이다.

스마트스토어 운영 초기에 그 친구와 쇼핑몰 운영에 대해 상의를 하고 난 뒤 여러가지 충고를 해줘서 쇼핑몰을 다 말아먹을 뻔 했다.
내가 미친 거지..

내가 안되니까 너도 안될꺼야..
그래, 안되길 바랬겠지..


암 선고를 받은 후 그 친구에게 알리지 않았다.
알려서 뭐하는가.
'너 그렇게 힘들어할 때 알아봤다' 라는 값진 충고를 또 들었어야 할테니까.


타인을 위한 미래는 없는 법이다.


세상을 향한 창은 여러개가 있을 수록 좋다.
이래서... 얇고 넓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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