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사회생활을 이겨내며 처자식을 먹여살리고 편하게 쉴 수 있는 집을 마련하는 내 남편은 슈퍼맨이다.
직장이라는 살벌한 정글 속에서 야수의 본성으로 영리하게 치고 빠지는 모습과 그 진흙탕 속에서 저리도 오래 버텨내는 모습을 보면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내가 가지지 못한 능력을 가진 저 남자에게 늘 감탄하고 있으며 늘 찬사를 보내고 있다.
거친 생활에 익숙한 남자는 성격이 좋을 수가 없다.
가족의 생계를 당당하게 책임지는 남자에게 그것까지 바래서는 안 될 일이다.
혼인이라는 약속으로 맺어져 오랜 시간 함께 하면서 인간 사이에 맺어질 수 있는 관계의 다양성을 체험 중이다.
하지만 남편과 새로운 관계에 직면할 때마다 늘 당황스럽고 어색하다.
애정과 섹스라는 관계의 관문을 통과하여 믿음과 의리의 관계, 배신과 분노의 관계, 용인과 포용의 관계, 알아도 모른 척의 관계... 삶에 있어서 자주는 아니지만 일상에 조금씩 균열이 생길 때마다 겪어야 하는 변화의 조짐이 보일 때 머리까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을 겨우겨우 참아내고 있다.
술을 많이 마셨다면 아예 기절할 정도로 많이 마셔서 밤늦게 집에 들어와 바로 잠을 잤으면 좋겠다.
어중간하게 폭탄주를 마시고 어중간한 시간에 집에 들어오면 본인의 생체시계가 그래도 작동하는지 바로 잠들지 않는다.
이상한 소리를 해대고, 아이들에게 미친듯이 스킨십하고(다 큰 여자아이들이다. 아무리 아빠가 딸에게 하는 행동이라지만 엄마 입장에서 너무 싫다.), 살림살이에 간섭을 해대고, 지갑에서 돈을 꺼낸다. 빨리 들어가서 주무시라는 말도 들리지 않는지 찬바람이 쌩쌩 부는 내 옆에서 계속 추근거린다. 어깨에 손을 얹으며 이런 저런 대화를 자꾸 시도하려 한다. 한창 젊을 때는 애들이 깨있는 상태에서 나를 침대로 끌어들이는 일도 많았다. 정말 진절머리친다.
맨 정신에서 저 남자는 저러지 않는다.
우선 말이 없다. 그건 괜찮다. 나도 말이 없는 편이니까.
지갑에서 돈을 함부로 꺼내지 않는다.
나, 그리고 딸들과의 스킨십에도 주의하는 편이다.
나에게서 서리가 흩날릴 정도로 차가운 모습이 보이면 옆자리를 살짝 피해준다.
본인이 늘 말하듯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를 줄곧 유지하는 남자다.
남자가 술먹으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지르는 엄마의 볼멘소리는 정말 짧은 생각이다.
술 먹고 하는 행동은 이미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그런 행동을 나에게만 했겠는가.
술을 먹으면 온 세상이 내 것 같이 아름답고 옆 자리에 앉아있는 인간에 대해 휴머니즘이 솟구친다. 그게 남녀불문이라는 게 문제지..
심지어 항암 치료 중인 아내가 집에 누워 있는데도... 말이다.
집안 식구가 아프다고 해서 다같이 우울해지는 것은 원치 않지만 저렇게까지 다 잊어버릴 수 있을까 싶다.
이혼을 생각할 정도로 이 남자가 바람을 핀 것은 아니다. 상간을 한 것도 아니다. (원나잇은 했겠지만, 뭐... 그것까지 말릴 수는 없지 않은가...)
결혼한 여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고민해봤을 소소한 생활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별 고민 없이 지나갈 수 있다. 오늘 잘 참으면...-_-;;;
뚜렷한 계획과 미래에 대한 그림을 가지고서 이 남자와 결혼생활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결혼은 그저 내 삶에 펼쳐지는 하나의 사건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많은 기대가 없었고, 어린 나이였지만 이 사랑이 평생 계속 되어야 한다는 비장함도 없었다.
행복한 가정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가 없었기에 별 탈 없이 잘 지내왔던 것 같기도 하다.
행복한 가정의 구성요소인 다정다감한 남편, 착실한 자녀를 만들기 위한 목표도 없었다.
내가 이루고 싶다고 노력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난 내 감정에 매우 솔직한 인간이다.
되는 대로 닥치는 대로 위기의 순간들을 넘겨왔다.
하. 지. 만.
술 쳐먹고 저런 식으로 일삼는 비정상적인 행동은 정말 용서가 안 된다.
심지어 항암 치료 중인 아내를 두고 술집에 드나들며 저런 행동을 한다는 것은 ... 정말이지...
저 인간의 머리를 두 쪽으로 쪼개도 시원치 않다.
술을 쳐먹더라도 평소대로 하라고 이 인간아.
형님이 조언을 해주셨다.
"너, 그래도 애들은 키워야 할 거 아니야. 이혼할 거 아니면 조금만 참고, 열심히 모아서 너나 잘 살 궁리나 하면 돼."
분노의 불길에 시원한 물을 뿌려 주는 명언이었다.
정신이 조금 차려진다.
관련글>>
남편과의 평화적 전선 구축 (0) | 2022.10.05 |
---|---|
비 내리는 밤 (0) | 2022.09.01 |
내가 안되니까 너도 안된다 (0) | 2022.07.29 |
악바리 근성의 똑순이들 (0) | 2022.07.28 |
영원히 고통받는 나르시스트 (0) | 2022.07.03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