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를 잠시 운영한 적이 있다.
SNS를 요리조리 기민하게 사용하는 성격이 못 되어서 별 관심이 없었지만,
내가 만드는 작품들을 포트폴리오처럼 정리해두고 싶었고... 뭐... 타인의 관심을 살 수 있으면 더 좋았으니까.. 관종에 목을 매던 하찮은 나는 그것을 시작하고 말았다.
거의 매일 사진을 올렸다. 당시 한창 작품을 뿜어낼 시기여서 시답잖은 실험작들도 미친 듯이 업로드를 하였다.
이렇게 열심히 하면서도 좀 꺼림칙했던 건,
내게 저장된 전화 연락처 사람들 또는 내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기반으로 친구 추천? 이 되는 기능이다.
반가운 사람의 연락처뿐만 아니라 더러운 기억만 남은 연락처가 뒤섞여 무작위로 나의 작품 이미지가 뿌려지는 것이다.
조금 무섭긴 했지만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할 수 있는 작품이었던 건지 하나둘 팔로워들이 늘기 시작했고, 난 두렵고 불안한 마음을 누르며 조심스럽게 인스타를 이어갔다.
지렁이 같은 나의 인스타 행보를 꾸준히 지켜보던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나보다 훨씬 전부터 인스타를 시작했었고 계정도 몇 개나 있는 듯했고(한 사람이 계정을 몇 개나 팔 수 있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인스타 친구님들도 엄청 많이 보유한, 해외 친구도 많은 사람이었다.
그 사람의 인스타 친구들이 나와 친구를 맺기 시작한 것이다.
난 그 사람의 친구들인 것을 알고 수락?? 을 누를까 말까 엄청 고민을 했었다.
그 사람도 인스타 계정을 키우면서 얼마나 고생을 했을 텐데 그걸 내가 손쉽게 가로채는 게 아닐까 하고 걱정했기 때문이다.
계속 지켜보다가.. 수락?? 을 눌러보았다. 그 이후로 조금씩 사람들이 더 들어오곤 했지만 어차피 인스타가 되든 말든 큰 관심이 없어서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어느 날 그 인스타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른 이야기로 뜸을 들이더니...
'너의 인스타가 잘 되지 않는 이유는... '이라고 운을 떼기 시작했다.
그때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지금도 혼란스럽고 정리가 안되지만 대충 적어보자면,
1) 너의 작품이 특이해서 다른 이들이 신선하게 볼 수 있다.
2) 심지어 흥미 있게 바라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사람이 모이지 않는 건, 너의 작품을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4) 고의적으로 너의 작품을 씹는 사람이 도처에 많을 것이다.
5) 보아라. 너에게 하트를 누르는 사람이 나밖에 없지 않으냐.
6) 이 참에 지금 운영하는 인스타는 폐쇄하고 다른 거 시작하는 거 어때?
7) 내 인스타로 넘어가서 다른 사람이랑 친구 맺기도 했더라?
8) 그 사람 미친 아줌만데 말이야......
삐..................................
그 이후로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 통화는 금요일 저녁에 했었다.
금요일이 정확하게 맞다.
그날 이후 방문을 닫고 이틀 동안 계속 울다가 출근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열심히 일하고 다시 주말이 돌아왔다.
평온한 마음으로 인스타에 올렸던 사진을 한 장 한 장 지워나갔다.
전체 삭제 기능을 몰랐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때의 기분은 지금도 생생하다.
내가 낳은, 눈도 채 뜨지 못한 귀여운 새끼들을 하나하나 목 졸라 죽이는 기분이었다.
계속 울었다.
너무너무 끔찍했다.
그렇게 나의 인스타는 어느 미니멀리스트의 멋진 그림처럼 흔적도 없이 하얗게 색칠되었다.
"고마워요^^
덕분에 깔끔하게 정리되었습니다.
다시는 주제넘게 인스타에 얼씬하지 않을게요. 부디 건승하세요~^^"
#가스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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