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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으로 매일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유방암 치료

by 이말뚝 2022. 11. 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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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직원도 아니면서 매일 출근하게 된 곳

 

방사선 치료를 위해 병원을 매일 출근하게 되었다. 약 한 달간.

방사선 치료 시작 전부터 교육, 외래 진료, 재활학과 진료, 상담, 모의 촬영 등 많은 단계를 거쳤는데... 뭐가 이렇게 복잡한가 싶다.

일이 복잡해지는 이유는 그만한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치료에 시달려온 환자에게는 그 모든 단계가 낯설고 두렵겠지만, 이들을 감당해내는 담당 선생님들도 이만저만한 노고가 아닐 것이다.

 

며칠 연속으로 밤 9시경 방사선 스케줄이 잡혀서 뜻하지 않은 야밤의 드라이브를 하게 되었다.

어차피 치료를 위해 나의 모든 일정이 맞춰져 있으니 그리 힘들 것도 없다.

밤 운전이 조금 피곤하긴 하지만 아직은 젊은 나이이니 도시의 밤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는 조금 남겨둘 수 있었다.

 

퇴근길의 교통 체증 속에 차가 서버렸다.

라디오를 틀어보았다.

깨끗한 음질, DJ의 낮은 음성, 구슬프게 울리는 고독한 기타 선율...

이 분위기 뭔가 익숙한데...

아니, 이건 고등학교 때 이후 처음 듣는 <배철수의 음악캠프> 아닌가.

디지털 음원이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아서 아직도 음반을 일일이 찾아 곡을 틀어주신다는 DJ계의 레전드.

이렇게 반가울 수가! 아직까지 건재하시다니~!!!ㅠㅠ

 

영화 아마겟돈의 주제곡, 에어로스미스의... 제목은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거.. 보컬이 기가 막힌 그 곡이 흘러나왔다.

배철수 아저씨가 한 청취자가 보낸 메시지를 읽어주었다.

"" 와~~~!! 이 곡 뭔가요? 처음 듣는데 너무 멋져요~!! ""

난 속으로 풋~ 웃으며 생각했다.

'아니, 저 곡이 얼마나 인기 많았던 곡인데.. 모를 수가 있나?'

근데 배철수 아저씨가 이렇게 말했다.

 

"그렇죠.. 저도 모르는 곡이 정말 많습니다. 심지어, 음악을 전문적으로 듣는 직업을 한 지 33년이 지나도.. 아직도 모르는 곡이 많아요. 아직도 제가 모르는 좋은 음악이 많다는 게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음악의 'ㅇ'자도 모르는 나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얄팍한 개울물 같은 내 영혼이 배철수 아재의 커다랗고 부드러운 파도에 확~~~ 휩쓸려버린 기분이었다. 

세상 최고로 무식한 인간은 남의 작은 무식을 비웃는다는 사실을 또다시 깨닫게 된다.

 

 

치료실에 들어가 상체를 홀딱 벗고 누워있으면 선생님들이 매직으로 이리저리 그림을 그려준다.

방사선 치료를 위한 위치 지정 작업이다.

집에 와서 배때기와 가슴에 그려진 그림 자국을 보니...

 딱, '고기(meat)' 같았다.

정육점에 가면 커다란 고깃덩이에 그려진 푸른빛 나는 매직잉크를 본 적이 있는가.

거울 속의 내 몸과 정육점 소고기의 차이점을 알 수가 없었다.

치료를 핑계로 잘 먹고 잘 자서 그런지 살이 통통하게 올라서 특 A++++++ 로 보였다.

아유... 살이 찌든 말든 이제는 모르겠다.

고기든 뭐든 좋다.

육체를 건강하게 만들어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뭐라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아직은 내가 해야 할 일, 해보고 싶은 일이 있으니 아무 생각 없이 병원에 열심히 출근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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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방사선 치료 전에 크림을 바르라고 했는데 이제 생각난다.

살색이 검어진다는데.. 미리 발랐어도 별 차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

이미 늦었지만 오늘이라도 발라야겠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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