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구토하는 인간은 처절했다

유방암 치료

by 이말뚝 2022. 11. 24. 22:14

본문

머리 많이 자람 (천연샴푸 사용)

사실...
2주 전 코로나에 걸렸었다.
1주일의 격리생활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발병 초기에만 몸이 아팠고 격리가 끝날 때까지 가벼운 기침, 감기 정도의 증상만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루한 격리생활이 끝나고 나서 본격적인 후유증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우선, 기침이 멈추지 않는다.
기관지 부위에 항상 뭐가 걸린 느낌이 있어서 숨 쉬는 박자가 잘못 맞으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기침을 해대는 통에 주위의 시선에 민망할 때가 많다.
그리고, 머리가 띵~하고 몸이 약간 붕~ 뜬 느낌이 든다.
아픈 것 같으면서도 딱히 아픈 것도 아닌...진통제를 잔뜩 복용한듯한 몽롱한 느낌으로 하루를 보낸다.
밤새 이리저리 뒤척대며 잠을 설쳐서 아침에 일어나도 이게 아침인가 아닌가 하며 시간 개념이 흐려진다.
조금만 일해도 쉽게 지치고 피곤해지며 조금이라도 힘을 쓴 부위가 있다면 어김없이 근육통이 생기고, 특히 수술한 부위가 평소보다 더 많이 쿡쿡~ 쑤신다.

일반인이었다면 그냥 이 정도에서 후유증이 그쳤을 것이다.

휴..... 나는 말이야...
매일 왕복 2시간 이상 교통체증을 뚫고 병원을 출근해야 했고,
아무 자극 없다고 느꼈던 5분정도의 방사선 치료는 알게 모르게 나의 몸을 지치게 했던 것이다.
(방사선 치료 부위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지만 특이하게도 열감은 없다. 이게 더 이상하다-_-;;;)
일주일에 한 번 방사선과 외래진료를 볼 때도 담당 교수님은 특이사항은 없다며 치료 잘 받으시면 되겠다는 말씀만 하셔서 난 그런가 보다 했다.
젤로다 복용으로 손발이 다시 시커멓게 변하고 있었고 한번씩 느껴지는 오심 정도야 참을 만했다.

그래... 또 잊고 있었다.
난 기저질환이 있는 면역력이 극도로 낮아진 암환자였다.
코로나 후유증의 어두운 그림자가 나에게 서서히 다가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격리가 끝나고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아침부터 관자놀이 깊숙한 부위에서 울려나오는 아주 기분 나쁜 통증을 느꼈다.
두통약을 먹을까 하고 살짝 고민하다가, 병원에 빨리 가야 했기 때문에 '얼른 갔다 와서 쉬자' 하는 마음에 이 불길한 징조를 무시하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사람이 몰리는 시간이라 지하 5층에 겨우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는데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느꼈다.
최대한 빨리 진료를 끝내야 한다. 하필 이 날은 외래진료가 잡혀있어서 다른 날 보다 더 오래 병원에 머물러야 한다. 조금만 힘을 내자.
그리고 방사선과 복도에서 우연히 만나서 친해진 언니와 점심약속도 되어 있었다. 조금만 참아보자..

아..... 두통이 점점 심해지면서 몸이 늘어지기 시작했다.
외래진료 대기 시간이 길어지자 난 의자에 거의 눕듯이 기대어 있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그런데 움직일 힘도, 말할 힘도, 고개를 들 힘도 없었다.

겨우겨우 진료를 끝내고 언니를 만났다. 언니가 내 상태를 보더니 "자기 이 상태로 운전해서 가다가는 큰 일 난다. 조금만 쉬었다 가자."라고 해서 언니와 함께 병원 앞 공원에 가서 앉아있다가... 갑자기 구토 증세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미친년처럼 병원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화장실!!! 화장실!!!! 을 찾아야 했다. 혼비백산한 나는 병원 입구까지 달려가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화단에 엎드려 토를 하기 시작했다. 토가 멈추지 않았다. 정말 울고 싶었다.
천만다행으로 그날 새벽에 먹은 아침밥이 다 소화되었던 건지 토를 해도 물만 나와서 정말 다행 다행 다행이었다;;; 진짜 쪽팔릴 뻔했잖아ㅠㅠㅠㅠㅠ 아;;; 거지 같은 나;;;;;;
내 뒤를 따라오던 언니가 깜짝 놀라서 나를 챙겨줬다. 어디서 휴지를 잔뜩 가져와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 고마움이라는 게... 말로 다 할 수 없다.
토만 하면 다행인데 토를 하면 할수록 두통이 점점 심해져서 비명을 지를 뻔했다.
차가 주차된 지하 5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윽;;;;;.... 엘리베이터의 진동 때문에 다시 토가 올라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입을 거머쥐고 주차장 구석으로 가서 또다시 토를 했다. 바닥에 흘리지는 않았다. 그 순간에도 대가리가 돌아가는 센스가 있었나 보다.
머리가 빠개질 것 같은 두통, 구토, 다리 풀림, 근육 경련이 한꺼번에 찾아와서 그대로 기절할 것 같은 몸을 벽에 기대어 겨우 지탱하였다.
나를 부축하던 언니는 또 어디서 휴지를 구해왔는지 나에게 건네주었다.
언니는 능력자. 천사!! 전생에 난 사회봉사를 많이 했었나 보다!!! 현생에서 이렇게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니!!! 이게 뭔 일이야!!!!
겨우 차에 앉아서 시트를 뒤로 젖히고 누웠다. 아까 화단에서 토를 하며 안경이 벗겨졌는데 그 이후 어디 갔는지 알 수 없었다. 밖에서 나를 지켜보던 언니에게 안경 좀 찾아달라고 했다.ㅜㅜㅜ
지하 5층에서 1층으로, 다시 지하 5층으로... 언니는 나 때문에 얼마나 병원을 뛰어다녔을까... 정말 미안했다.ㅠㅠㅠㅠㅠ
걱정스러운 언니의 모습을 뒤로 한채 어쨌든 집으로 출발했다.
병원을 벗어나 도로에 접어들고 첫 번째 빨간 신호등이 걸렸다.
욱~!!! 하고 토를 해버렸다.
운전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휴지고 뭐고 잡을 새도 없었다. 앉은자리에서 입을 벌린 채 토를 해야 하는 그 거지 같은 심정을 아는가.
토를 한 뒤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두통 때문에 정말 미칠 것 같았다.
오함마로 대가리를 산산조각, 말 그대로 박살 내는 그 통증을 글로 표현하기도 힘들다. 사실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 뒤로 토를 몇 번 더 했다. 운전을 하면서... 앞을 보면서....
뒤따라오는 오함마 두통을 견뎌가면서....
운전을 하면서 난 엉엉 울었다. 눈물을 흘릴 힘도 없어서 그런가... 바짝 마른 울음소리, 이 상황이 너무 무서워서 덜덜 떨며 우는 그런 소리였다.
토하면서 뒤따라오는 근육 경련 때문에 운전대를 꽉 붙잡고 앞차만 따라갔다. 너무 아픈데 운전을 어떻게든 해야 했고 집에 가야 했다. 살려면 그래야 했기 때문이다.
눈물도 나지 않는 처절한 짐승 같은 울음, 비명 같은 절규를 내질렀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집에 도착해서 화장실로 달려갔다. 또다시 토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토를 해서 축축해진 옷과 외투를 벗고 침대에 누워 덜덜 떨기 시작했다.
약을 먹을 수도 없다. 이때는 물만 먹어도 토하니까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게 나았다.
비몽사몽 밤이 되고 새벽이 되었다. 이제 좀 괜찮아졌을까 하고 강력진통제를 복용했더니 여지없이 깨끗하게 토해버리고 말았다.
견디기 힘든 통증이 계속되면 누구나 나처럼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나를 두고 슬퍼할 가족, 자식.... 다 필요없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죽으면 이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을테니 눈에 뵈는게 없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통증으로 시커멓게 변한 나....
그래도 방사선 치료를 위해 병원으로 향해야 했다.
두통이 나아지질 않았다. 머리를 조금만 흔들어도 그 통증 때문에 온 몸이 종잇장처럼 구겨질 것 같았다.
병원 복도를 힘없이 휘적휘적 걷고 있던 중, 뭔가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렸다.
얼핏 기억나는 목소리만 3명이었다.
나이 있는 여성, 젊은 남성, 젊은 여성, 이렇게 세 명의 목소리가 번갈아 들리며 '이거 떨어졌다' 며 세 명 중 한 명이 나의 등을 두드렸다.
'응?... 뭐지?...'
나의 의식은 몽롱했다.
뒤를 돌아보니 젊은 여성이 나의 환자카드를 들고 나에게 건네주었고, 나이있는 여성분은 나를 걱정스러운 듯 쳐다보고 있었고, 젊은 남성은 바로 내 뒤에서 뭔가를 알려주려고 하는 모습이었다.
난 주머니에서 환자카드가 떨어지는 소리도 듣지 못했고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를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했다.
걸어가는 모습이 영락없는 중환자였으니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던 그들이었지만 안 도와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겨우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오함마 두통이 장도리 두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와.... 그런데 말이지.... 진통제가 듣지 않는 두통은 이번이 처음이었어.
병원에서 처방받은 겁나 센 진통제를 먹어도 듣지를 않는 거야...
미쳤다.
난 이제 어떡하냐ㅠㅠㅠㅠㅠㅠㅠㅠ

오늘은 3일 차 되는 날이다.
겨우 누룽지, 죽, 밥을 조금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구토증 때문에 이틀 동안 복용하지 못했던 젤로다를 다시 꿀꺽 삼킬 수 있었다.
겨우 일상을 찾아가는 모습... 그래서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조금 살만한 건지 입술에 포진이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다.
두통이 사라지니 이제 자잘한 몹쓸 녀석들이 나를 괴롭힌다. 얼른 약국에 가서 연고를 사 왔다.
태어나서 이렇게 약국과 친해지기는 처음이다.
그리고 약국에 이렇게 많은, 좋은 약들이 구비되어 있는지도 처음 알게 되었다.
의대 가는 오빠, 언니들을 무조건 존경하기로 했는데, 거기에 약대 언니, 오빠들도 추가하기로 했다.
늘 감사합니다.
사회적으로 우수한 인적 자본들의 덕을 이렇게 보네요.
!!!!!!!! 뤼스펙!!!!!!!
의대, 약대 아들 둔 시엄니들은 무조건 혼수를 잘 받으셔야 합니다. 암요!!!!!!!!!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