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두통이 지끈지끈 올라오는 날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짜증 나는 기분을 조금이라도 안정시키기 위해 커피 한 잔을 옆에 두고 어제 먹다 남은 닭강정을 정말 맛없게 우적우적 씹고 있다. 튀긴 음식을 먹지 말아야 하는데.. 에고~~ 나도 모르겠다.
이런 날엔 조용히 가라앉아 있던 과거의 껄끄러운 기억의 앙금이 훅~ 하고 수면 위로 둥실둥실 떠오른다.
유방암 환자 친구에게 보낼 메시지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그저 가만히 놔두는 걸 가장 추천드리지만 정말 뭔가 힘이 돼주고 싶다면, 용기를 내어 전화를 불쑥해보는 것도 괜찮은 일인 듯하다. 진실한 태도로 정말 걱정하는 마음을 표현해 주자. 함께 울어주는 것도 괜찮다. 훈계질을 할 요량이면 전화통화는 아예 접어라. '내가 예전에 아파봤는데 말이야...' 이딴 식의 말은 고이 접어 가슴 깊이 묻어둬라. 암 선고로 충격받은 친구를 잃고 싶지 않다면.
암 선고를 받았을 당시 주변 지인에게 연락을 주기도 하였고 받기도 하였는데 하나같이 도움이 되는 게 없었다.
'그러게 실비보험 들라고 내가 그렇게 잔소리 하지 않았냐', (응, 걱정마, 너보단 돈 많아)
'요즘 유방암 별거 아니라던데 금방 나을 거야', (니가 한 번 아파봐라)
'아이고~ 그렇게 아픈지 몰랐네. 괜찮아지면 연락해. 건강식 사줄게.' (이 인간은 끝까지 문자로만 함.)
'휴직기간 충분히 즐기길 빌어요.' (완전 미친 거 아님?)
너무나 우울하고 슬픈 마음에 휩싸여 있던 나는 속이 상할 대로 상했고, 이 닝겐들을 다시는 안 볼 생각으로 모두 차단해 버렸다.
유방암 진단 전 몇 달간은 너무나 피곤하고 아파서 퇴근 후 침대에 계속 누워있기만 했다. 그 당시에는 내가 아픈 원인을 알지 못했으니 주변인들도 내가 그냥 의욕이 없는 줄로만 알았다. 오랜 시간 나와 연락하고 지낸 사람은 이 기간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가장 피곤한 금요일 저녁시간) 전화를 하여 기본 2시간씩 통화를 이어가는 것이다. 그 사람은 그런 행위가 나를 위로해 주고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는 행동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더 어이없는 건 그 이야기를 내가 다 들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내 이야기를 할라치면 그 사람은 가만히 듣고 있으면서 나에 대해 많은 것을 파악한 뒤 적절한 피드백을(자신의 솔직한 느낌이 아닌) 나에게 전달하려 하는 거다. 그런 느낌이 세월이 갈수록 진하게 다가왔다. 심지어 내 남편에 대한 피드백까지 서슴치 않고 하길래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건 선 넘는 거지)
늘 같은 반응으로 일관했던 나에게 짜증이 났던 건지, 평범한 생활을 이어가던 나를 한 번 건드려보고 싶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의 작품 활동을 지적하며 고귀한 충고의 말씀을 이어나가길래... 바로 전화를 끊고 차단해버렸다. 모든 게 다 싫고 다 귀찮았다.(나중에 든 생각 : 규칙적으로 전화를 하여 장시간 대화를 이끌어 간 이유는... 내게 뭔가 부탁할 게 있는데 말을 꺼내기 어려워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눈치 없는 내가 너무 답답해서 그렇게 예민한 이야기를 꺼내어 나를 자극했나 보다.)
그 사람을 차단하고나서 벌을 받은 것인지,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암선고를 받았고 충격에 휩싸인 채 1주일을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 사람에게는 절대 연락하지 않았다.
차단은 내가 먼저 했으니 내가 다시 연락을 하는게 웃기기도 했고, 만약 내가 다시 그 사람에게 연락을 주었을 때 그 사람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 난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니가 먼저 연락 끊더니 필요하니까 다시 연락하는구나, 니가 그럴 줄 알았다'며 오른쪽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며 멸시에 가득 찬 눈길을 보내는 얼굴...
'병에 걸린 건 안타깝지만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없다'는 냉랭한 태도...
'필요할 때만 전화한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공유하며 화풀이 하는 모습...
와~~ 눈에 선하다...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낸 사이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반응이 정확하게 예상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어린 시절 그 사람은 같은 반 동무들과 무리지어 한 명을 굉장히 외롭게 만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 사람의 어린 시절을 본 적이 없는데 이게 무슨 일일까 싶을 정도로 정확한 이미지로 그려지는 것이다.
이게 무슨 개떡 같은 소리냐고 몰아세운다면 할 말 없지만 순간적인 직관이라는 게 무시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냉장고에서 눅눅하게 식어버린 닭강정도 글을 쓰는 사이 많이 먹어서 이제 1개만 남았다. 그렇게 달콤하고 맛있던 양념소스가 왜 이리 느끼한지 속이 더부룩해져서 못 먹겠다. 뎅장;;;
워낙 쓰레기 같은 기억이라 글로 남길 가치도 없지만,
뱃속에서 부글거리며 가스를 뿜어내던 불쾌한 것을 밖으로 빼내본다.
이렇게 하면 속이 조금이라도 시원해질까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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