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같은 집 안을 정리하느라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딱 일주일 전력적으로 정리하다가 일이 마무리되자 OFF 버튼이 눌러진 것처럼 온몸의 에너지가 다운되어 버려서 아무 짓도 할 수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열심히 정리했더니 집안 식구들이 모두들 만족해하는 눈치다.
정리라는 게 처음부터 잘 되면 좋겠지만, 그다지 쌓인 것이 없는 상태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지난 세월 나의 쓰레기 같은 고민의 흔적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 정도 볼륨을 형성하고 나니, 항목별로 정리하기가 매우 수월했다. 각 물품에 맞는 정리함과 선반을 구매하기가 아주 좋았다는 이야기다.
우리 집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나의 짐들은 살림살이도 아닌 것이 어디 물류창고에 갖다 놓으면 딱 좋을 허접한 물건이 대부분이라, 진짜로 물류창고에 쓰일 만한 앵글 새시 선반을 구입하기로 했다. 좁은 집에서는 선반을 높게 올려서 공간을 수직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그렇게 찾아낸 것이 스피드랙 社의 제품이다.
제품 주문 페이지를 열고 보니 골치가 아파졌다. 선택해야 할 옵션 창이 너무 많은 것이다. 우선 공간의 크기를 정해야 했고 선반 개수, 앵글 높이, 폭 등을 미리 계획을 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극 충동적인 성향의 인간이라, 이런 식으로 직관적이지 못한 주문창을 아주 극혐 하지만...
매장에 방문하는 것을 세상 귀찮아하는 나는 어떻게든 인터넷쇼핑몰 주문으로 이 대업을 완성해야만 했다.
난 크게 심호흡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줄자를 찾아 집안에서 정리가 안 되는 곳(거의 대부분)의 치수를 재고 들어갈 선반의 높이와 칸막이의 개수 등을 하나씩 계산해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두 개 정도만 하면 되겠거니 했지만 하루 자고 나면 또 생각나고 하루 자고 나면 또 다른 공간을 정리해야겠다는 열의가 불타올랐다.
각 방에 알맞은 크기로 선반의 이미지를 그린 다음, 스피드랙 제품 페이지에 들어가 내가 계획한 크기와 유사한 제품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모듈 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에 적절한 제품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이틀 간격으로 제품을 주문하여 제품 도착과 동시에 정리하는 식으로 해서 장장 8일 간 물품 정리 작업을 진행하였다. 생업에 바쁜 남편의 도움을 바랄 수 없으니 오로지 내 힘으로 모두 해내야 했다. (대부분의 주부가 그렇지 않을까 싶다)
도착한 박스를 뜯어 조립하고 끼우고 어찌어찌해서 커다란 선반들을 하나씩 뚝딱뚝딱 만들어낸다. 칸막이를 끼워 선반의 형태를 완성한 다음, 포장 박스를 버리러 나갔다가 다이소에 들러 선반에 맞는 플라스틱 정리함을 여러 개 구입하여 집에 돌아와 정리작업을 마무리한다. 정리함이 부족하면 또 다이소에 가서 사 온다. (나 때문에 우리 동네 다이소의 플라스틱 정리함이 다 없어지더라는... 재입고에 시간이 걸리는 듯;;;)
작업이 다 끝나고 보니 내가 주문한 앵글 선반이 8개나 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와.... 미친. 내가 이걸 다 한 거야..ㅠㅠ
앵글 선반이라 인테리어는 과감히 포기했었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만족만족~~~^^ (스피드랙 서브 브랜드? <홈던트하우스> 제품라인은 좀 더 깔끔한 느낌이 듭니다.)
퇴근할 때마다 달라지는 집 안 풍경을 보고 남편은 놀라는 눈치지만 말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술 취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뭐, 대단한 반응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나에게 가장 좋은 것 아닌가. 정리가 마무리되고 보니 기분이 상쾌해지고 좀 더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 갈 때가 조금 골치 아플 것 같긴 한데, 어쩔 수 없다.
설치는 내가 했으니 철거는 남편에게 해달라고 요구해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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