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태어나서 10대 중반이 되기까지.... 난 너무나 힘들었다.
밥 먹이고, 똥 치우고, 씻기고, 설거지, 청소, 같이 놀아주기, 놀이공원 가기, 여행 가기, 캠핑 가기 등등... 이런 일에 내 시간의 대부분을 왜 투자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미친 소리 같겠지만 솔직한 나의 생각이다. (나에게 모성애가 부족한 것 같기는 하다.)
그리고... 한 인간을 생물학적으로 길러내는 것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
난 소심한 은둔자다.
밖에 나가서 육체적인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 정말 고역이다. 밖에 나가서 누군가를 만나야 하고 사회적 관계를 유지한다는 건 나에게 엄청난 에너지 소비를 요구하는 아주 무서운 일이다.
이런 내가 직업을 갖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는 게 기적에 가까울 정도다. 가족들이 하나같이, 지금까지도 놀라워하는 부분이다.
생계를 유지해야 했으니 당연히 직업을 갖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을 했다.
한 남자와 만나 뜨거운 사랑을 했으니 당연히 결혼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아이가 생겼다.
이건 뭐지?...;;;
와...;;;ㅠㅠ
아이를 낳으면 그냥 키우게 될 줄 알았다.
나의 영혼과 육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갈아 넣어야 하는 무한노동의 10년, 그 어둠의 세월이 내 앞에 무시무시하게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는 걸 전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은둔자이기 때문에 그 어디에서도 육아의 힘듦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고 친정엄마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시댁의 도움은 바라지 않았다. 시댁 여자들이 나의 집에 들락날락하는 순간부터 나의 모든 사생활은 뒷담거리가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일상성,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로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는 매일의 노동이 아닌가. 미칠 것 같은 아이의 찡얼거리는 울음 속에서 난 우울증에 제대로 걸리고 말았다. 자살 충동은 당연한 거고, 살림은 포기했었고, 남편과는 매일 싸웠다. 그 와중에 둘째가 생겨서 내 생애 최대 몸무게를 갱신하는 사이코 돼지가 되어 있었다.
애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면서부터 동네 여자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이런 모임은 처음에는 엄청 즐거운 것 같지만 곧 깨어지기 마련이다. 어린아이를 대충대충 키우는 나의 모습은 그 여자들에게 뒷담거리만 제공했다. 난 나대로 그 여자들의 극성맞은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자녀들이 아주 어릴 때, 견문을 쌓는답시고 아까운 돈을 뿌려가며 비싼 체육활동 시키고, 해외여행 가는 게 부모로서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인가? 여행 안 가고 놀이공원 안 가면 미친 엄마인가? 남들 다가는... 재미라곤 1도 없는 서울랜드에 왜 자주 가야 하는 거지? 고속도로를 4시간 동안 기어가서 속초 바다를 봐야만 아이들의 감성이 고양되는 것인가? 고만고만한 젊은 부부와 아이들로 구성된 4인가족이 빼곡히 들어찬 싸구려 콘도에서, 똥파리 날리는 캠핑장에서 왜 돼지고기를 구워 먹어야 하는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런 외부 활동을 했던 건 동네 여자들과 함께 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생애 그 시절만큼 쓸데없다고 회상되는 때도 없을 것이다. 고기와 맥주로 몇 년의 세월을 보내던 한심한 시절이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즐겁자고 그렇게 다닌 거지 자녀들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활동이었다. 먹고 노는 건 언제든 할 수 있었다. 놀기 위해 시간을 빼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았다. 어느 순간 이 의미 없는 즐거움을 위해 나와 남편의 시간을 할애하는 게 정말 미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패거리를 빠져나오면서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지만 난 용기를 내었다. 나만의 방법으로 내 아이들을 키우기로 작정했기 때문이다.
나의 원래 모습대로 돌아갔다.
우선 밖에 나가지 않았다.
책을 보고 작품활동을 하고 제2의 직업을 위해 새로운 분야를 공부했다.
집에만 처박혀 있는 나의 모습에 신랑은 정말 못마땅해했다. 애들 교육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둥 내가 천하에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둥 다른 집 여자는 애들 데리고 해외연수도 간다는 둥(다른 집 여자가 누군지 알고는 있었지만 그간 참 많이도 좋아했었나 보다. 미친넘..) 온갖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다. 그렇게 부족한 나란 인간과 이혼을 생각하든 말든 난 신경 쓰지 않았다. 미래가 두렵지도 않았다. 나의 명상과 학습, 그리고 창작의 시간과 그간의 커리어를 깡그리 무시하는 저 사람을 앞으로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내가 더 많이 했을 것이다. 그때마다 난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은 내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내가 그리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육아의 시기이다.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은 저절로 자란다. 조금 더럽게 자라도 괜찮다. 육체적으로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 나는 기다릴 것이다. 아이들을 위해 나는 그때 나설 것이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나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집에만 있는 나를 한심하게 보았던 남편의 눈빛도 달라졌다.
(집에만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능력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음)
나의 학습 시간을 방해하는 영양가 없는 인맥도 칼같이 정리했다.
큰 아이의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면서 난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았다.
부족한 공부는 아파트 상가에 있는 작지만 알찬 단과학원의 도움을 받았다.
자소서는 내가 첨삭지도를 해주었다.
아이의 마인드컨트롤을 위해 학교의 실상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며 아이를 심적으로 안정시켰다.
그래도 불안할 때는...
내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라고 마음속으로 크게 외쳤다.
수술과 항암치료를 하는 어려운 시기였기 때문에 오히려 정신을 더 맑게 유지할 수 있었다.
얼마 전부터는 수능 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내 아이가 맞닥뜨려야 할 입시의 벽을 기성세대의 입장에서 느껴보기 위해서다. 이런 활동은 입시에 대해 나와 아이가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이건 확신할 수 있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나의 아이들을 위해서 나의 타고난 재능을 교육 활동에 최대한 적용하며 생활할 것이다.
밤늦게 홀로 공부하는 내 아이를 절대 외롭게 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할 거냐고?
어차피 난 집에서 혼자 공부하고 있을 거니까 어려울게 뭐가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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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술 먹고 늦게 들어온 남편이 눈이 풀린채 나에게 말한다.
고맙다고...
난 못 들은 체하고 방을 나왔다.
이제 시작인데 왜 저런 말을 하지? 아직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선,
10년 전... 나와 나의 아이들에게 린치를 가했던 동네 여자들에게 복수한다.
그다음은 내 인생을 갉아먹은 시간도둑들이다.
이거 뭐... 유치하기 짝이 없는 데스노트가 되어 버렸네~~-_-;;;
내가 굳이 복수하지 않아도 다들 알아서 망가지고 있어서 크게 힘들 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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