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삭막한 T발인간의 마리아주 찾기 #얼리베이글

말뚝이의 일기

by 이말뚝 2025. 4. 27. 12:12

본문

 

 

 

 

 
도파민의 분비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지랄 맞은 체질이라 매일매일 행복한 생각만 하고 사는 게 나에겐 가장 최선이다.
암으로 무너진 적이 있으니 나만 행복하면 되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가 말이다.
작업실에서 하루 종일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작업생각만 할 수 있는 지금이 얼마나 사치스럽고 감사한 시간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몸이 아프거나, 날이 흐리거나, 작업에 집중할 수 없는 시간이거나 하면... 그 행복의 흐름이 멈추기 때문에
그 단절을 손쉽고 빠르게 연결해 줄 수 있는 도파민의 옹달샘, 커피를 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큰 병 걸렸던 사람들은 커피를 칼같이 끊어버리던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살기 위한 선택이었겠지.
나는 그 정도로 병이 중하진 않아서 마셔도 괜찮다고 내 마음대로 진단해 버렸다.
그러다 보니 좀 더 맛있는 커피, 좋은 커피를 찾아다녔는데 집 앞에 있는 커피나 저 멀리 있는 커피나 뭐가 그렇게나 다른지 모르겠더라는 거지.
워낙에 커피에 무지한 인간이라 혀 또한 무지한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시간이 너무 아까운 거다. 그래서 다 포기하고 집 앞 상가에 있는 카페와 파리바게트를 철새처럼 돌아다니며 살고 있었다. 

상가 복도를 지나던 중, 한 여리여리한 여자분이 임대 딱지가 붙어있던 가게 쇼윈도를 열심히 닦고 있었다. 새로 오픈할 가게의 대표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무슨 가게를 오픈하냐고 물어봤더니 베이글가게라고 말씀하시는 거다.
오..... 내 삶에 작은 변화가 찾아오는 것인가.
베이글은 별로 먹어본 적이 없는데 왠지 이건 커피와 함께 먹으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가게 오픈하면서 아파트 단지 내 많은 분들의 관심을 끌었다. 베이글 먹으려고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되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던 건지, "이제는 가까운 곳에서 베이글을 먹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다"는 반응이 많았다.
오로지 커피만 마시던 순혈주의자, T발인간은 커피로 만족되지 않는 부분을 메꿔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마다 가서 커피와 함께 베이글을 먹었는데, 그 맛이 꽤 괜찮더라는 거지.
몰랐다. 베이글이 이런 맛인 줄...
그리고 베이글로 인해서 커피맛이 이렇게 더 잘 느껴질 줄이야!

느끼한 빠다맛이 안 나서 그런가, 커피랑은 찰떡궁합이더라.
두통에 몸서리치다가, 아니면 복통으로 쌩고생할 때... 집에만 있어도 아플 때가 많아서 영~ 사는 맛이 없었는데, 가까운 곳에 왔다 갔다 할 데가 생겨서 너무나 다행이다.
오픈하면서 정말 힘든 일이 많았을 텐데 항상 밝은 모습으로 응대해 주시는 사장님께 항상 감사드리며 살고 있다.
매일 라인업이 달라지는 것도 좋고, 무엇보다 재료 본연의 풍미가 잘 살아나서 냄새 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어제 먹다 남은 건 냉동했다가 다시 해동해 봤는데... 오.... 그 풍미가 사라지지 않고 더 은은하게 퍼지는 거다.
냉장고에서 더 발효된 건가?..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오늘은 일요일인데, 내일(월) 가게 오픈날이 기대되는 중~^^
백수가 되어서 여러 가지로 긴축재정하고 있는데, 요건 먹고살아야 노말한 정서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


15년 전, 복직을 앞두고 운동으로 감량을 했었다. 2년에 걸쳐 7~8kg 정도 빼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 심적 고통은 지금도 떠올리고 싶지 않다. 
닥치고 매일 운동하면 된다고 해서 매일 운동했고, 식사량도 줄였지만.. 성질이 너무너무너무 더러워져서 남편과 아이들은 나와 함께 사는 게 너무 괴로웠을 거다. 그러나 살찐 몸으로 교단에 설 수는 없어서 아파서 쓰러지더라도 체육관에 열심히 다녔다. 하필 그때 고른 종목이 복싱이었다. 애가 아파도 그 아픈 애를 데리고 체육관을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미친 x이 따로 없는데, 결국 그 더러운 성질로 인해 동네 또래 여자들 사이에서 파이터로 소문났고, 층간 소음으로 시비 걸던 아래층 인간 5명과 거의 매일 현피를 떴으며, 경찰이 와도 쫄지 않는 깡다구와 여전히 시비를 거는 아래층 것들에 대해 지긋지긋할 정도로 뜨거운 복수의 맛을 보여줬다.(남편은 절대 도움 안 되는 거 아시져? 결국 그 인간들과는 휴전했어요. 화해 아님. 그러고 지금 집으로 이사옴) 그 더러운 성질은 직장에서도 빛을 발하여 나와 싸우지 않는 부장이 없을 정도였다. 싸가지 없이 대드는 후배들은 그 자리에서 나한테 개박살 났다. 나와 싸운 늙은 아줌마들은 그 싼 입으로 온갖 소문을 퍼뜨렸고 갖은 입방아 속에서 나의 직장생활은 온전할 리가 없었다. 살면서 맞을 수 있는 뒤통수는 다 맞아본 것 같다.  거기서도 절대 나의 무리를 만들지 않고 혼자서 버텼다는 게 정말 신기할 지경이다.
그렇게 목표 체중을 다시 만들어냈고 다음 몇 년 동안 입고 싶은 옷은 다 멋지게 소화하며 잘난 척하며 돌아다녔다. 


잘난 척하는 인간은 그대로 둬도 된다. 어차피 그 시간은 오래가지 못하니까.

결국 병에 걸려 직장을 그만뒀고, 예쁜 옷으로 가득 차 있던 옷장도 이제는 추레한 운동복만 몇 개 걸려있을 뿐이다.
크게 아프면서 나에게 잔뜩 끼어있던 거품은 다 빠지고 이제 개털이 되었다. 
그러나..
 
난 지금이 너무 좋거든.
아침에 일어나 애들 학교 보내고, 베이글의 풍미를 두개골 속에 가득 채운 다음,  전통머리작업을 구상하는 이 고요한 평화를 나만 느끼고 살고 싶다.



 
 
 
---------------------------------------
얼리베이글 >>
https://map.naver.com/p/entry/place/1498222910?c=15.00,0,0,0,dh&placePath=/home

 

네이버 지도

얼리 베이글

map.naver.com

 
 -------------------------------------
 
덧붙임:
애들 학원 가고 노인네와 나 둘이서 누워 있기만 한, 텅 빈 집이 시끄럽다고 아래집 9층에서 경비실을 통해 야발야발 인터폰이 자꾸 오길래
바로 내려가서 딱 이렇게만 말하고 왔다. 상대는 어리고 예쁘장한 주부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으면, 경찰을 부르던가, 이사를 가던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세요. 안 그러면 절대 해결되지 않습니다."
얼마 뒤 걔들 이사감.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인간들 어린애가 있다 보니 그 아랫집 8층에서 층간소음 항의를 엄청 많이 받아왔었다고 함. 그 분노와 속상한 마음을 아랫집 8층에 풀지는 못하고(무서우니까) 우리 집에 푼 거였음. 근데 8층보다 더 미친 도라이가 10층에 있었던 거지. 이건 예상치 못했던 반전. 그 어리고 약삭빨라 보이던 예쁜 주부님이 얼마나 놀랐을까.  그 인간들 이사 가고 난 뒤 엘리베이터에서 8층 아줌마와 가끔씩 마주치면 서로 다정하게 눈인사를 한다. 나보다 조금 언니뻘인데 사람이 경우 있고 괜찮더라고.

 

 

 

 

 

'말뚝이의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장이 끝나고  (0) 2024.11.10
포스트잇환장러 / 후기있음  (2) 2024.11.10
시끄러웠겠지만 별로 죄송하지는 않습니다  (0) 2023.10.11
부엌 도구 정리  (0) 2023.08.24
신념의 통수  (8) 2023.08.11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