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지키자.
나를 위해서.
첫 번째, 어린 자식 앞에서 시댁 욕을 하지 않는다.
우리 세대 엄마들은 남편들에게 많이 맞고 살았었다.
대부분 경제적 능력이 없었고(여자가 직업을 가진다는 것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시대였으니까) 자신만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어가지 못했으니 남편을 비롯한 모든 시댁 식구들로부터 불합리한 대우를 받았을 것이다. 얼마나 화가 났을까.
온갖 홧병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그나마 내편이라고 생각되는 자식 앞에서 이런 저런 가슴 속에 쌓인 울분을 터트린다.
우리 엄마가 그랬다.
나와 아주 가까운 식구들...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숙모, 고모, 사촌동생들에 대한 온갖 험담을 다 듣고 자랐다.
어린 마음에 불쌍한 우리 엄마 힘들게 하는 정말 나쁜 인간들이라는 고정관념이 가슴 속에 자리잡게 되었고,
20살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친척들에 대해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태도를 드러냈다.
그런데, 그들은 내게 잘못 한게 없었다.
명절 때마다 새파란 만원짜리 지폐를 지갑에서 꺼내서 서슴없이 건네주셨고,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어른들이 나서주셨다. 난 그게 그분들이 당연히 해주셔야 하는 일인 줄만 알았다.
내가 그때 그 어른들의 나이가 되고 보니 그분들이 나름대로 어른으로서 조카에게 최선을 다해주신 거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어리고 철없던 조카가 조금 컸다고 싸가지 없는 소리를 해대는 모습을 보는 그들은... 정말 가슴이 무너졌을 것 같다.
언젠가 막내 삼촌이 술을 잔뜩 드시고 우리 엄마에게 울부짖듯 말씀하시던 게 기억난다.
"형수가 야들한테 그런 소리를 했다면 나는 절대로! 다시는! 형수 안볼낍니데이. 안 좋은 일은 우리 세대에서 끝내야지 절대로 절대로! 야들 세대까지 대를 물려가면서 내려가며는 안된다 말입니다!!!"
그때 엄마의 표정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궁지에 몰린듯한 그 표정은 그렇게 미묘할 수 없었다.
나는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라는 저 여자... 정말 이상한 사람이었구나.'
결혼을 하고 내게도 조카가 생겼다. 막 시집온 젊은 여자는 시댁의 여자 어른들에게 상당히 흥미로운 관찰 및 질투의 대상이 되기 쉽다. 별 생각없이 했던 말과 행동이 모두 험담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그 느낌을 핏빛으로 선명하게 느끼게 했던, 그래서 더 끔찍했던 것은 그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조카 아이들이 나에게 볼멘 소리를 하기 시작한 일이었다.
'할아버지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데 왜 휴가를 안쓰는 거예요?'
'저는 쓸데없이 비싼 레스토랑에서 고기 써는 여자는 싫고 설렁탕 같은 서민음식 잘 먹는 여자 만나서 결혼할 거예요.'
(비싼 레스토랑 데리고 가서 내 돈으로 니뽄산 와규 고기 사먹였을 때 들었던 소리다.)
아... 저 어린 아이들이... 저런 소리를 누구로부터 들었을까.
순간 분노가 치밀어올랐고, 너무나 억울했다.
그때 다짐했다. 난.. 자식 앞에서 시댁 관련된 사람들의 험담을 절대 하지 않겠다고.
아직도 잘 지키고 있다.
내 아이들은 남편 식구들의 핏줄이기도 하다. 내가 무슨 권리로 그들 혈육간의 사이를 틀어지게 한단 말인가.
나는 시댁의 가족문화 형성 및 그 전승에 대해 적극적으로 행동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뭐, 적극적일 필요도 없지만 말이다.
방해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어린 자식 앞에서 전화로 장시간 수다 떨지 않는다.
이건 정말 후회하는 일이다.
스트레스를 푼다는 빌미로 전화통을 붙잡고 짧으면 1시간, 길면 2시간 통화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
남에게 리스너로서의 자세를 유지해주는 나란 여자는 정말 품위있는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장시간 통화를 계속하다보면 자세가 흐트러지고 소파에 누워 다리 하나를 척 걸쳐놓고 뭔 벼슬자리 논의라도 하는 마냥 심각하게 이야기하며 한숨을 푹푹 쉬다가 갑자기 미친년처럼 깔깔거리고 웃기도 한다.
끊임없이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고민을 듣고 함께 생각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생각했었다.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이 흐르고 내가 챙겨야 할 하루 일정이 점점 많아지게 되면서 어느순간 전화통화가 부담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몇 년동안 지속된 수다시간이라 함부로 그 시간을 줄이는게 되지 않았다. 습관이 이렇게 무섭다니.
내가 시끄럽게 통화하는 동안 내 아이들은 조용히 책상에 앉아 있어서 나는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큰 애가 친구와 길게 통화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소파에 쳐누워서 다리를 긁어대며 시끄럽게 재잘거리고 꺼이꺼이 웃기도 하면서 온갖 생쑈를 하는 것이다.
큰 애랑 똑같이, 우리 엄마가 소파에 기대어 친구와 시끄럽게 재잘거리고 꺼이꺼이 웃으며 장시간 통화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오 마이 갓.
끔찍했다.
정말 꼴보기 싫었다.
저게 내 모습이라니.
그렇게 나는 자식을 위해 확실한 마음의 결정을 내렸고, 모두를 위한 고요한 저녁 시간을 마련하였다.
세 번째, 어린 자식 앞에서 술 취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암 선고를 받기 전 나는 거의 매일 술을 마시는 여자였다.
와인, 맥주, 막걸리.. 선물 들어오는 술은 가리지 않고 다 마시곤 했다.
혼자 술먹고 취해서 2시간 동안 전화 통화를 하고 부엌에서 비틀거렸다.
(천만다행으로 동네 여자들을 불러 집에서 술판 벌이는 짓은 하지 않았다.)
엄마라는 사람은 약할 수 있다. 하지만 술을 마셔서 의도적으로 약한 모습을 연출할 필요가 없고 더욱이 자식 앞에서 광우병 걸린 듯한 모습을 보여줘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린 자녀들에게 나는 그저... 입에서 나쁜 냄새를 뿜어대는 거리를 둬야할, 멀어지고 싶은, 불쌍하고 이상한 인간일 뿐이었다.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자녀들이 어느정도 성장하기까지 엄마라는 사람은 일상의 루틴에 굴하지 않는, 조금은 무미건조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 가정 생활을 지속할 수 있으니까.
삶이라는 게 그런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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