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서 시엄니한테 세뱃돈 받아본 며느리가 바로 나다.
정말 싹수없는 인간이라 느낄 수 있는데... 난 정말 싹수가 없다.
형님이 정성스레 끓여준 죽도 마다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줄곧 누워서 설날과 그 이튿날을 보냈다.
늘 골골거리던 인간이라 시댁 식구들도 또 그러려니 하며 익숙해하신다ㅠㅠ
항암, 수술, 방사선 치료를 어느 정도 끝내고 난 뒤였기 때문에 이제 장거리 여행과 다른 잠자리에 잘 적응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정확한 오산이었다.
항암일정이 밀려서 시골로 출발하는 날 오후 진료를 받았기 때문에 상당히 막히는 귀경길이 되었다. 남편과 번갈아 운전하려 했지만 머리가 지끈지끈해서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어렵게 도착한 시골집에 짐을 풀어놓고 방에 들어갔더니... 웬걸 완전 냉골이다. 공기가 너무 차다. 거기다 전기장판까지 고장 난 건지 최대 온도로 높여도 20도를 넘지 않는 미지근한 상태였다. 시끌시끌한 설 명절 때 전기장판 바꿔달라며 식구들에게 징징거리는 짓은 정말 하기 싫었다. 더군다나 시엄니께서 양쪽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하셔서 거실에 깔려있는 절절 끓는 전기장판에 앉아계시는 걸 너무 좋아하시기 때문에 내가 감히 거실의 전기장판과 내 방의 전기장판을 바꾸는 행동을 절대 할 수가 없었다.ㅜㅜ
나와 아이들이 묵는 방의 공기가 이렇게나 차갑게 느껴지는 건 나만의 느낌일까.. 보온이 되지 않는 전기장판과 차가운 바람을 막기 위해 덮어쓴 이불 두 채, 패딩점퍼와 모자를 풀착장하고 잠들어보려 애썼다. 그렇게 하루 이틀 밤을 보내고 설날 새벽이 되었다.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이 몰려오며 참을 수 없는 울렁거림을 느꼈다. 칙칙 거리는 밥솥냄새, 반찬, 찌개 냄새에 세상이 뒤집어질 것 같은 구토가 마침내 시작되었다.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내 모습을 본 형님이 다 관두고 방에 들어가 누워있으라고 하신다.
누워있어도 편한 게 아니다. 방의 공기가 여전히 차가웠고 환기가 되지 않아 정신이 더 아득해져만 간다. 하지만 방문을 열어둘 수 없었다. 어른들께 세배를 올리고 난 다음, 마을 여기저기 살고 계시는 친척들이 계속 인사를 오기 때문에 방문을 열 수도 거실의 따뜻한 전기장판에 누워있을 수도 없었던 것이다. 안방도 있지만 시부모님이 함께 사용하시는 돌침대에 설 아침부터 며느리가 누워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ㅠㅠ 아주버님과 형님이 사용하시는 방에도 도저히 들어갈 수 없었다. 성묘에 바쁜 신랑을 부를 수도 없었다. 나 혼자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비상약으로 타이레놀을 챙겨갔지만 당연히 들지 않았다. 왜 게보린을 가져가지 않았냐고? 게보린 챙기는 걸 깜빡해서 고속도로 휴게소 편의점에 들렀더니 거기에는 타이레놀밖에 없었거든...ㅠㅠㅠㅠㅠ
몽롱한 정신으로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다 토하니까;;;) 계속 식은땀을 흘리며 누워만 있었다. 얼마 전 갑상선암 수술을 한 작은집 동서가 찾아와서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서 내 손을 꼭 잡아주는 게 아닌가. 동병상련이라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동서와 나 사이에는 별 말하지 않아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공감의 물결이 쓰나미처럼 몰아닥치는 것이다. 서로의 증세와 치료상황 등을 폭풍처럼 쏟아놓으며 두 손을 마주 잡았다. 내가 그때 정신이 좀 더 멀쩡했으면 대화를 하며 눈물을 많이 흘렸을 것 같다. '수술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왜 내려왔냐'며 나를 타박하는 동서가 너무 고마웠다ㅠㅠㅠㅠㅠ 나도 동서에게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말고 적당히 앉아있다가 얼른 집에 가라'라고 덕담을 해주었다.ㅜㅜㅜㅜㅜㅜ
두통이 조금씩 가라앉으면서 동네를 천천히 산책하였다.
시골의 공기는 너무나 깨끗하고 달고 맛있었다. 이 공기를 통에 담아서 집에 가져가고 싶었다. 진심.
설날의 밤이 되면서 나의 두통도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밤 9시가 되어서야 달달한 과일을 조금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상태를 본 남편은 뭐가 걱정이 되었는지,
여간해서는 밤운전을 하지 않는 이 남자가 웬일로 설 다음날 새벽 3시에 출발하자고 하는 것이다.(아주버님께서 출발하시는 일정에 맞추기로 함)
그렇게 집에 돌아왔다. 휴우..... 기나긴 여행....ㅜㅜ
형님은 내가 두통으로 고통받는 게 방사선 후유증 같다고 하신다. 그럴 수도 있겠다...
지난 1년 간의 치료로 내 몸은 완전히 만신창이가 되었고... 암환자가 겉보기에는 멀쩡해도 몸의 여러 감각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또 잊고 있었다.
암환자의 잠자리가 바뀔 때는 온갖 준비를 미리 철저히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의 위암 시술이 3일 앞으로 다가왔다.
좁고, 춥고, 불편한 보호자 침대에서 어떻게 밤을 새워야 할지 마음의 준비를 조금은 할 수 있게 된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땀과 눈물을 오지게 흘려가며 얻은 소중한 경험치이다ㅜㅜ (아... 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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