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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통의 노예

유방암 치료

by 이말뚝 2023. 6. 28.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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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잠이 깰 무렵, 뒤통수에서 이상한 낌새가 나타났다.
누군가가 두꺼운 금속판을 나의 후두부에 쑤셔 박은 다음, 쇠망치로 금속판 양쪽을 쾅쾅 내리치는 듯한... 끔찍한 통증이 느껴지는 것 아닌가.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아.......ㅠㅠㅠㅠㅠㅠㅠ
또 시작이구나.
끔찍한 하루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았고, 나는 겁에 질린 채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 무서웠다.
이 통증은 나를 또 얼마나 괴롭힐 것인가. 당연히 두통약은 듣지 않을 것이고 아무리 빈 속이어도 노란 위액까지 싹 다 뱉어내야 하는 구토를 하루종일 해댈 것이다.
어쨌든 작업실로 향했다.
도착하고 나서 난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무서운 통증에 시달리며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 바닥에 누워버렸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움직일 수 없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두개골이 인정사정없이 빠개질 것 같았다. 오심 구토가 시작되면 흔들리는 두개골을 잡고서 화장실로 뛰어든다. 변기를 붙잡고 토를 계속한다. 두통은 더 심해진다. 구토를 하느라 몸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아...............ㅠㅠ... 이게 사는 건가 말이다....
죽기 전의 통증이 이런 것이라면.... 난 미리 죽음을 체험하고 있는 것인가... 죽음은 이렇게 막막한 것이었던가.
한 여름이지만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 때문에 나는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작은 담요를 몸에 칭칭 두르고 나서 계속 천장만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잠은 오지 않는다. 계속 토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세 시간 정도 지나면서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자리를 바꾸며 누워보다가 나에게 딱 맞는 편안한 자세를 발견했다. 바로 엎드린 자세이다. 태아처럼 아기처럼 엄마에게 안긴 자세말이다. 가슴팍에 적당한 압력이 주어지면 편안한 느낌이 든다. 아기처럼 엎드린 자세를 취하자마자 스르르 잠이 들었다. 신기했다.
그렇게 1시간 정도 지난 것 같았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체크할 힘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겨우 정신을 차린 다음, 비틀비틀 발걸음을 떼어 집으로 향했다.
두통으로 비몽사몽 하는 동안 하필 그 사이 중요한 전화가 몇 통 와 있었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쁘게 일을 해야 했다. 창백한 얼굴로 비틀거리며 일하는 모습을 본 엄마가 뭐라 뭐라 잔소리를 해대는 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출발 도착 시간을 계산해 보니, 두통으로 쓰러져서 정신을 차리기까지 4시간 정도 걸렸다.
직장에서 두통이 발생했다면... 그 끔찍한 통증을 4시간 그대로 앉아서 견뎌야 했을 것이다. (전에도 계속 그렇게 일을 했었으니까.)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나서 식사를 하기까지는 그 이후로 다시 4~5시간이 흘러야 했다.
난 아주 밤늦은 시간에 찐감자를 먹고 물을 마셨다.
이제 겨우 정상으로 돌아왔다.
두통이 발생하고 온전히 하루를 다 버렸다. 그래도 이번 두통은 하루로 끝나서 정말 다행이다.
 
한동안 컨디션이 너무 좋아서 희희낙락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 무더운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며 작업실을 정비하고 새로운 작업을 기획하고... 멀쩡하지 않은 인간이 멀쩡한 척을 했더니 하늘이 벌을 준 것이다. 나대지 말라고.
나대지 말고 잘난 척 말고 멀쩡한 척하지 말자.

난 정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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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건강검진을 했었는데, 오늘 결과가 나왔다.
갑상선 결절이 생겼다고 한다.
두통에 시달리던 나는 그 자리에서 울고 말았다. 육체와 영혼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직장일을 다시 시작하고자 했던 작디작은 내 마음의 불꽃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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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통이 가라앉고 식사를 하고 샤워를 마친 다음, 갑상선 결절에 대해 조금 찾아보니 뭐 그리 겁먹을 건 없을 것 같다. 내 몸에 좀 더 신경 쓰라는 이야기니까.
오늘은 날이 저물었다. 내일 또다시 잘 살아보자.

아직 죽은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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