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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죽으면 그만이다' 에 속지 말자

유방암 치료

by 이말뚝 2023. 10. 23.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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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 실험 중

 
표준치료가 완료된 후 6개월 추적검사로 유방초음파를 찍었다.
그런데, 반대쪽 유방에 뭔가 보인다고 한다.
난 아무 생각이 없었다.
서둘러 추가 촬영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향했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문제가 있으면 치료를 하면 된다.'라고 마음을 달래었다.
그런데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차는 앞으로 가는데 내 몸은 점점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어느새 내 몸은 도로 아래로 아래로 지하로 꺼져내려가고 있었다. 그 상태로 액셀을 계속 밟으며 운전했다.
정확한 결과는 다음주가 되어야 알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 곧 '재발'이라는 진단이 내려질 거라는 섬뜩한 예감이 들었다. (아마 맞을 것이다)
흔들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작업실로 향했다. 재발이든 아니든 내 할 일을 해야 했다. 누워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테니까.
처음 암진단을 받았을 때만큼 충격을 받진 않았다. 충격과는 다르게 우울감이라는 시커먼 녀석이 나를 천천히 물들이기 시작했다. 하루이틀삼일... 점점 더 마음이 울적해지고 예민해지고 서서히 미쳐가고 있었다. (남편이 점점 괴로워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어제 동생이 '같이 밥 먹자'라고 엄마를 통해서 연락을 해왔다. 난 가기 싫었다. 제발 나를 혼자 놔두길 원했다.
근데 이 노인네가 나를 부득불 끌어내어 같이 가려하는 게 아닌가. 작업실에서 일하는 나의 시간을 싹둑! 끊어내고 온갖 생떼를 써가며 나를 끌어낸다. 난 저 노인네가 미친 줄 알았다. 동생을 만나러 가는 차 안에서 이 노인네와 얼마나 싸웠는지 모른다.
노인네가 말도 안 되게 자기 고집을 세울 때 항상 꺼내는 말이 있다.
"너희 에미가 살아봐야 얼마나 살겠니, 난 죽으면 그만이다."
난 거기에 지지 않고 짧게 응수했다.
"죽는다고? 누가 먼저 갈지 어떻게 알아?"
 
...............침묵................
 
드디어 노인네가 입을 다물었다.
좀 살 것 같았다. 
노인네들 하는 말들 다 귀담아들으면 안 된다. 절대 지지 말아라. 그 오랜 세월을 견뎌낸 역전의 용사들은 어지간한 충격에 넘어지지 않는다. 큰일이 터지면 생각보다 의연하게 잘 버텨낸다.
 
다음 주 교수님을 만날 때까지 난 맘 편하게 계속 미쳐 있을 것이다.
남편님께 미리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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