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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 먹은 두통 인간, 일주일 동안 고생하다

유방암 치료

by 이말뚝 2023. 7. 15.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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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워서 힘들어 죽을까 봐 나름대로 피서 준비를 하였다.

냉감 담요 구입, 아이스크림 냉장고에 쟁여놓기, 냉콩국수 먹기, 아이스아메리카노 마시기, 물컵에 얼음 넣어서 시원하게 마시기, 시원한 오이 먹기, 에어컨이랑 선풍기 신나게 틀기...

모두 차가울 '냉'자가 들어가는 아이템이다. 35도를 넘어서는 무더운 날씨에 겁을 먹은 나는 매일매일 빠짐없이 위의 아이템들을 돌아가며 체험하였다. 환자 주제에 완전 미쳤다리....

이렇게 몸이 즐겁고 입이 만족스러웠던 나의 불량 생활은 곧 문제를 일으키고 말았다.

무서운 두통이 찾아온 것이다.

늘 찾아오는 손님이라 이번에도 한 번 세게 아프고 지나가려나 하는 생각에 아무 느낌이 없었다.

드디어...

월요일부터 뒷목에서부터 뻣뻣한 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ㅠㅠ 그래, 좋아. 하루 이틀만 아프면 되겠지...ㅠㅠㅠㅠㅠㅠ 조금만 참아보자..

화요일.. 뒷목의 뻣뻣함이 후두부를 타고 올라와서 양 옆 관자놀이까지 번지기 시작했다. 심각한 통증, 구토 증세는 없었다. 불쾌하고 기분 나쁜, 은근한 통증이 계속되어 아무 짓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가만히 앉아있거나 누워있거나, 견디기 힘들면 밖에 나가 조금씩 걷거나 하는 일이 전부였다.

화요일 밤. 참다 못한 나는 두통약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통증이 살짝 가라앉는 것 같아 잠이 들었다.

수요일 아침... 통증은 이제 나의 관자놀이를 공략하며 두개골을 본격적으로 자극하기 시작했다. 소화가 되지 않아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토할까 봐 무섭기도 했다. 이번 두통은 신기하게도 뒷목이 각목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증세를 가져왔다. 조금만 웃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생기면 뒷목에 싸한 기운이 올라오면서 근육이 미친 듯이 조여들었다. 아~~~ 그 통증은 생각만 해도 너무 기분 나쁘다... 딱딱한 폼롤러를 베고 누워 뒷목 마사지를 열심히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반신욕도 매일같이 했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수요일 오후, 단골 마사지샵에 가서 원장님께 읍소를 할 수밖에 없었다.

"원장님~~~ 제발 제 뒷목이랑 두통 좀 풀어주세요...ㅠㅠㅠㅠㅠ"

전문가의 거침없는 손길에 나의 머리통과 어깨는 사정없이 박살이 났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입을 꽉 깨물고 강력한 마사지의 통증을 참아내었다. 

나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원장님의 말씀...

"몸이 전체적으로 너무 차요. 체온이 떨어지면 정말 치명적입니다. 수술받은 쪽 가슴 모양도 오늘은 뭔가 달라요. 전반적으로 근육이 너무 수축되어서 혈액 순환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찬 것은 절대 드시지 말고 더워서 땀이 나더라도 따뜻한 물을 드시고 잠자리에는 보일러를 틀어서 주무세요."

마사지가 끝난 후 겨우 사람꼴로 회복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얼굴색이 조금은 돌아왔다. 하지만 두통은 여전했다. 뒷목은 각목을 댄 듯 그 딱딱한 정도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 정말 미칠 것 같다.

목요일. 조금 나아지나 기대했지만 여전히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계속 뒷목을 잡고 다녔고, 하루종일 밥솥을 열지 않았다. 폼롤러 마사지를 계속했더니 뒷목이 멍든 것처럼 욱신하니 아프기만 했다..ㅠㅠ 계속 잠을 이룰 수 없어서, 학교과제로 늦은 시간까지 열일하는 딸아이를 도와주며 시간을 보냈다. 새벽 3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금요일 아침,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니 '뿌지직~~' 하며 박스 구겨지는 소리가 난다. 흐미.... 사람 돌아버리겄네.

그래도 움직일 수 있으니까 다행이다.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작업실로 향했다. 버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서 정류장 뒤에 있는 편의점에서 커피 한 잔 할 여유가 생겼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커다란 빗방울도 편안하게 감상했다.

금요일 저녁. 이제야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었고 두통에서 벗어나는 느낌이다. 뒷목을 만져보니 전에 없이 말랑말랑한 살덩어리가 만져진다.

기분이 좋아져서, 컴퓨터를 켜서 남편이 입을 츄리닝 반바지와 더울 때 마실 생수를 주문했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길게 가는 두통은 처음이다. 한 여름이라 에어컨, 선풍기 바람 가리지 않고 시원하게 지내는 게 좋은 줄 알았는데 이건 완전 잘못 생각한 것이었다. 원장님의 말씀대로 따뜻한 물을 마시고 전기장판을 켜서 잠을 자보니 시원하게 지내는 것보다 훨씬~~ 더 컨디션이 좋아지는 것 아닌가! 아침에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나 자녀들의 아침식사를 챙기고 남편을 배웅할 수가 있었다. 놀라운 일이다.

나 같은 환자에게 시원하고 차가운 것은 치명타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난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죽으려고 환장한 거지...-_-

덥다고 미친 듯이 먹었던 오이. 이것도 문제가 된 듯하다.

오이는 여름 제철 음식이라 마음껏 먹었는데... 여름 과일? 의 장점이자 단점인 '몸을 차갑게 하는' 성질이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차가움으로 가득했던 지난 몇 주간의 섭식은 내 몸을 온통 차가움으로 채웠고, 결국 나에게 일주일 간의 고통을 선물로 받았다.

이제 찬 것은 먹지 말아야 한다.

덕분에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먹기 위해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카페를 끊을 수 있었다. 커피가 먹기 싫어진 것이다. 세게 아파보니까 사람이 또다시 변하는구나. 그렇게 끊기 힘들던 커피 생각이 절로 없어지다니.. 

또다시 아플 수는 없잖아.

이렇게 점점 소심해지고 매사에 까탈스러운 인간이 되어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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