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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좀 내려놓자

유방암 치료

by 이말뚝 2023. 11. 1.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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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원하시는 대로 다 이루어지소서. 무엇이든 주님의 뜻대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유방암 표준치료 6개월 정기검진 결과를 듣기 위해 병원으로 가면서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반대쪽 유방에서 뭔가 보인다고 해서 추가 검사를 하고 그다음 일주일간 말 그대로 미친 시간을 보냈다. 두려움에 떨고 마음속으로 울부짖으며 상처 입은 짐승처럼 처절해했다. 일이 바쁜 남편은 집에 들어오면 잠자기 바빴고, 한창 예민한 사춘기 자녀들에게도 아무런 티를 낼 수 없었다. 평소보다 더 말이 없어졌을 뿐이었다. 가뜩이나 말이 없는 편인데 집안은 절간 같았으며 싸늘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천둥번개가 시끄럽게 내리치고 있었다. ' 또 살게 해 달라. 이번에 살아나면 정말 새롭게 살겠다...' 이따위 바람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남편과 아이들 모두 나 하나쯤 없어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 내가 악을 쓰며 그동안 이루어왔던 것들이 손가락 사이로 스르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움켜잡기 위해 그렇게 애썼는데... 

잘 살기 위한 욕망은 너무나 무겁다.

살지 안 살지 아무도 모르는데 잘 살기 위해 자기 등짝에 무거운 짐을 이고 간다. 그래서 60대 이상 늙은이들은 윗등이 그렇게 굽었나 보다. 남녀불문하고 하나같이 거북목이다. 뼈에 힘이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꼿꼿하게 지탱할 힘을 잃은 척추는 끊임없이 중력에 이끌려 땅으로 꺼져 들어간다. 결국 땅 속에 묻히게 되겠지. 짐 좀 그만 지고 살아라 노인들아. 가슴속에서 머릿속에서 짐 좀 끄집어내 버리고 가볍게 살아라.

50세가 넘었다면 연장된 목숨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병원의 도움이 없었다면 대한민국 사람 대부분은 아마 40대에 많이 죽었을 테니까. 젊었을 때는 없었던 병이 나타나는 시기가 40대. 바로 내 나이다. 100년 전이었다면 내 병은 이렇게 진단되었을 것이다.

'가슴에 생긴 종기가 온몸에 퍼져서 밥을 먹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며 바싹 말라 죽음'

1923년에 나는 벌써 죽었을 목숨이다. (난 현대의학과 건강보험에 정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이번 검사의 최종 진단은 '재발의 증거는 발견되지 않으며 차후 재판정 요망'이다. 극히 멀쩡하니까 직장에 나가서 돈 벌고 열심히 살라는 소리다.

 

암도 겪었겠다, 나는 인생의 시련을 갈고닦은 실력자 아닌가. 세상을 위한 나의 쓰임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내가 잘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젊은 시절 끊임없는 노력으로 갈고닦은 빛나는 재능도 있다. 이렇게 멋진 나는 이전보다 좀 더 큰 시야로 삶을 살아가야 하며 나라는 도구가 세상에 어떻게 쓰여야 할지 생각하며 조용히 묵상해야 한다.

긍정적이고 가벼운 마음으로...

늘 기뻐하라. 그러면 평화가 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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